조립PC시장이 무너지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가 침체된 터에 컴퓨터 메이커들이 앞다퉈 PC 가격을 내림에 따라 조립PC가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용산전자상가 테크노마트 등 대형 전자상가의 조립PC 업자들은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13일 오후 3시. 서울 용산전자상가 컴퓨터매장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평일이라지만 신학기 성수기인데도 여름 휴가철을 연상시킬 만큼 손님이 적다. 어느 점포를 둘러봐도 상담 테이블은 대부분 비어 있고 점원들은 신문을 읽거나 하품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8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아름컴뱅크의 이경철 사장은 "작년에 비하면 상담 고객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이맘때는 하루에 스무명 이상의 고객과 상담을 했는데 요즘은 기껏해야 열명남짓"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립PC 판매도 반토막이 났다. 작년엔 월평균 1백여대를 팔았지만 요즘은 50대 정도에 그치고 있다. 조립PC시장 위기는 무엇보다 메이커들이 값을 대폭 내린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중견업체들이 출시한 펜티엄4 PC 값은 조립PC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주컴퓨터 주연테크 뉴텍컴퓨터 등은 중앙처리장치(CPU) 펜티엄4 1.5㎓,메모리 1백28MB,하드디스크 40GB급의 PC를 1백만원 미만에 팔고 있다. 조립PC와 비슷한 값이다. 조립PC의 경우 10만원 상당의 운영체제(OS)를 따로 사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중견업체 PC가 오히려 싼 편이다. 친구들과 함께 용산전자상가를 찾은 한 대학생은 "조립PC를 사려고 나왔는데 가격을 보니 중견업체가 판매하는 PC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열악한 애프터서비스(AS)도 조립PC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조립PC의 경우 문제가 생기면 대개 이용자가 매장까지 들고 가서 수리를 받아야 한다. 용산전자상가내 삼성전자대리점에서 일하는 양무열 과장은 "가격이 조립PC보다 최고 40만원쯤 비싸더라도 믿을 수 있고 AS가 확실하다는 이유로 대기업 PC를 선호하는 고객이 많다"고 설명했다. 용산전자상가 조립PC시장의 위기는 늘어나는 빈 점포에서 실감할 수 있다. 시원컴퓨터 김광배 대리는 "시설이 오래된 전자상가의 경우 대낮에도 자물쇠가 채워진 점포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고 말했다. 김경근 기자 choi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