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PC 산업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게 됐다. 세계 PC 업계 2위인 컴팩이 3위인 휴렛팩커드(HP)의 우산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PC 업계의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델·IBM의 연합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뉴HP'의 등장이 미칠 영향권이 PC 산업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PC 시장의 가격 전쟁이 양사가 뒤늦게 육성해 온 컴퓨터 서비스와 저장 네트워크 시장으로도 옮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통신장비 및 반도체 등 관련 산업의 인수합병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왜 통합했나=양사 모두 생존을 위해서다. 컴팩은 올 들어 세계 1위 PC 자리를 델컴퓨터에 빼앗기는 등 매출과 수익 급감으로 고전을 면치 못 했다. HP도 2분기 순익이 95% 감소하고 6천명의 감원이 진행되면서 한 때 칼리 피오리나 회장의 조기퇴진론까지 불거져 나왔었다. 양사는 위기 돌파구로 고수익인 컴퓨터 서비스 사업의 강화를 택했다. 그러나 이 부문 시장을 선점해 온 IBM EDS를 추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같은 열세를 만회할 카드로 통합을 택한 것이다. 여기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피오리나 회장의 결단이 크게 작용했다. 잘 될까=월스트리트 저널은 양사의 합병은 우선 미국 정부의 반독점 조사를 통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뉴HP는 PC 서버 이미징 프린팅 시장의 세계 최대 거인으로 우뚝 서게 된다. PC 시장에서 18%를 차지해 1위인 델컴퓨터(13.1%)를 가볍게 제친다. 서버컴퓨터 시장에서도 37%를 장악해 현 2위인 델의 두 배 수준에 이르게 된다. 특히 HP와 컴팩의 최고 주력 부문이 프린터와 PC로 서로 달라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공동 경영 체제가 제대로 굴러갈지는 미지수다. 46세로 동갑내기인 피오리나 회장과 컴팩의 마이클 카펠라스 회장은 각각 새 합병회사의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과 사장을 맡기로 했다. 명확한 영역 설정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협화음만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PC 업계의 재편과 함께 가격 전쟁을 가속화해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조립 업체의 구조조정으로 부품 업체의 납품량 축소와 단가 인하 압력이 더해져 부품 업계에는 중단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 상대적으로 고수익 사업이던 컴퓨터 서비스 시장마저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