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넓이 무게 따위의 단위를 재는 단위법과 길이를 재는 자,부피를 측정하는 되와 말,무게를 다는 저울과 같은 측정기구를 통틀어 도량형(度量衡)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도량형 제도는 세종때에 와서 확립됐다.

세종은 박연을 시켜 아악을 정리하면서 황해도 해주산 기장(黍)을 구해 중국 한나라의 역사서인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를 참고로 악기의 기본음을 내는 황종률관을 만들고 이것을 기준으로 황종척이라는 자를 만들었다.

이 황종척(미터법으로 환산하면 34㎝ 정도)의 길이를 기준으로 천문의기 옷감 등을 재는 데 쓰였던 주척(20㎝ 정도) 영조척(30㎝ 정도) 등을 만들었다.

여러 차례 병란을 거치면서 이 척도 기구들이 유실돼 영조 16년(1740년)에는 세종때의 유물을 근거로 표준 척도를 제작했다.

현재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에는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놋쇠자(鍮尺)가 전해온다.

이 자는 길이 2백46㎜,폭 12㎜,높이 15㎜의 4각 기둥형태다.

이 자의 4면중 한 면에는 예기척과 주척이 새겨져 있으며 나머지 면에는 포백척 영조척 황종척 등이 반 자(半尺)씩 사용례와 함께 음각돼 있다.

국제도량형국이 공인한 헬리움(He)-네온(Ne) 레이서 간섭계를 사용,이 자들의 눈금과 간격 2백50개를 측정한 결과를 보면 1백50~2백㎜ 자에 대해 눈금선의 굵기를 0.1∼0.25㎜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공업규격(KS)을 만족할 정도로 눈금의 균일성과 정밀도가 높았다.

또 이 자의 재질과 성분을 방사화분석법(PIXE)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구리 70%,아연 20%,주석 2%,납 1% 등이 합금된 황동(黃銅)이었다.

따라서 이 자는 현대의 칠삼(七三)황동에 가까워 형상 치수 눈금표시 표면유지 등 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계·금속학적 요건을 고루 갖춘 것으로 판명됐다.

이 자는 국보급 과학문화재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자들 가운데 가장 정밀하게 제작된 것이다.

18세기에 이같이 정밀도가 우수한 도량형기를 제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도량형기를 비롯한 과학기구 제작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좋은 증거다.

남문현 건국대 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