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주부 전정영(42)씨.

리모컨으로 벽에 붙은 50인치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디지털TV를 켠 뒤 인터넷에 연결한다.

요리 사이트를 찾아 궁중요리 정보를 살핀다.

중학교 2학년 첫째 딸의 방에서 랩음악이 시끄럽게 들려 검색을 제대로 할수 없다.

전씨는 디지털TV의 홈네트워킹 메뉴를 띄워 디지털오디오를 선택해 음악볼륨을 줄인다.

잠시 후 전씨는 백화점에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인터넷냉장고의 보관 음식란을 살펴보니 과일과 음료수가 부족하다.

주문 메뉴로 동네수퍼에 주문 하자 바로 과일과 음료수가 배달돼 온다.

터치팬을 들고 둘째 아들에게 "엄마 5시에 돌아올테니 간식은 냉장고에서 찾아 먹도록 해라"는 메모를 남긴다.

백화점에 도착한 전씨.

"빨래를 돌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라 IMT-2000 단말기를 꺼내 인터넷에 접속한다.

인터넷 세탁기를 선택, 와이셔츠 빨래를 명령한다.

30분후 빨래가 끝났음을 알리는 데이터가 IMT-2000 단말기로 전송돼온다.

전씨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전자오븐레인지에 넣어둔 통닭 요리를 가동시키고 에어컨의 환기를 명령한다.

가족들과 저녁을 끝낸후 그는 디지털TV를 켜고 DVD플레이어 명령어를 선택, 고전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타이틀을 작동시킨다.

늦은 시각 침대에 눕자 도어록이 자동으로 잠기고 거실 등이 소등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디지털 전자제품이 몰고올 미래상이다.

그러나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동양매직 해태전자 등 국내 전자회사들은 21세기 국가 경쟁력의 바로미터인 전자제품의 디지털을 위한 개발과 투자에 온힘을 쏟고 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0과 1의 기호로 만들어진 디지털이 바로 삼성의 미래이고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구자홍 LG전자 부회장은 디지털 전도사를 자처하며 경영환경 제품생산 기업문화 등을 모조리 디지털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전자회사들이 디지털에 주력하는 이유는 기존 아날로그 제품으론 더 이상 새 시장을 창출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냉장고나 TV는 국내 보급률이 이미 1백%다.

성장의 한계를 맞고 있다.

또 디지털로 무장하지 않으면 세계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전자업체들이 디지털가전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는 디지털TV.

디지털TV는 디지털네트워킹 시대 안방에서 세가지 중심기능을 맡는다.

먼저 고화질과 고음질을 제공하는 오락 기능이다.

이 제품은 연기자의 머리카락을 볼 수있는 고선명화면과 6개 채널에서 제공하는 CD 수준의 음향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또 인터넷 등을 비롯한 쌍방향 대화 기능을 갖고 있다.

프로야구 시청중 특정선수의 데이터를 끌어와 볼 수도 있다.

이른바 "바보상자"가 "정보상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냉장고나 DVD(디지털 비디오 디스크) 플레이어 디지털에어컨 디지털캠코더 디지털카메라 PC 등을 네트워크로 한데 묶어 통제하는 홈마스터 역할을 하게 된다.

디지털TV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디지털 가전제품이 통합 관리되는 것이다.

국내 업체들은 이에따라 지난 80년대말부터 디지털TV 개발에 착수,세계적 기술수준을 확보했다.

디스플레이, 영상 송수신용 칩셋, 디지털셋톱박스 등과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기술을 확보했다.

국내업체들이 "디지털 시대엔 결코 해외 선진업체에 뒤지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이유이다.

삼성전자는 특히 98년 11월 세계 최초로 고선명 디지털TV를 양산, 미국시장에 내놔 지난해에만 2만대를 팔았다.

올해중엔 30만대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LG전자도 지난해 8월이후 디지털TV의 수출을 개시하고 있다.

국내 디지털 TV 시장은 내년도에 상업 방송이 시작되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2005년까지 디지털TV에서만 5~6조원의 새로운 시장이 생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냉장고나 세탁기 전자레인지 에어컨 등 전통 전자제품도 네트워크 기능을 갖춤으로써 디지털 제품으로 변신되고 있다.

디지털 개발은 완제품에만 그치지 않는다.

PDP, TFT-LCD(초박막애거정표시장치) 신개념의 유기EL 등과 같은 디지털 화면표시용 부품과 각종 정보기기 관련 부품산업도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제품은 제품출시경향과 매출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디지털제품의 경우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개발된다.

글로벌 스탠더드시대에 시장선점을 꾀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를 뺀 제품의 수출에서 디지털제품 비중이 40%에 이를 만큼 비중이 커지고 있다.

올해중엔 디지털 전자제품 비중이 10%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21세기 가전제품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변화되느냐하는 것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회환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윤진식 기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