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집권 길 열어…국가기관 및 사회 전반 통치기반 확고
이슬람주의·권위주의 강화 예상…건국이념 세속주의 종언 평가도
경제난에도 "물가 내린다, 정책불변" 자신…시장 반응은 '냉담'
철옹성 확인한 에르도안, 정치경제 역주행 '마이웨이' 고수할 듯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대선 승리를 통해 지난 20년간 다져온 통치 기반을 재확인했다.

야당의 거센 도전을 뿌리친 그는 이번 재선을 계기로 권위주의 체제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30년 초장기 집권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도전이 된 경제난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기존 경제정책에 대한 확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향후 튀르키예 경제가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철옹성 확인한 에르도안, 정치경제 역주행 '마이웨이' 고수할 듯
◇ 제왕적 대통령제 통해 범접 불가 권력 확립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총리로 집권한 뒤 20년 집권기 최대 고비로 평가된 이번 선거까지 승리함으로써 30년 집권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17년 개정된 헌법에 따르면 튀르키예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중임이 가능하다.

또한 중임 대통령이 임기 중 조기 대선을 실시해 당선될 경우 5년 임기 연장이 가능하다.

2018년 당선 후 이번에 중임에 성공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향후 5년 임기 중 조기 대선을 통해 다시 당선될 경우 2033년까지 30년 집권이 가능해진 것이다.

49세에 처음 집권해 현재 69세인 그가 2033년에 79세가 되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종신 집권 길을 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게다가 개정 헌법은 대통령에게 부통령 및 법관 임명권, 의회 해산권, 국가비상사태 선포권까지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취임 후 행정부와 사법부, 입법부에 대한 통제를 확고히 했다.

또한 미디어 규제당국의 권한을 강화하고 '허위정보법'으로 불리는 언론·소셜미디어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등 언론 및 사회 분야까지 장악했다.

여기에 이번에 대선과 함께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당 정의개발당(AKP) 연합이 과반 의석을 달성한 것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날개를 달아준 결과가 됐다.

철옹성 확인한 에르도안, 정치경제 역주행 '마이웨이' 고수할 듯
◇ "에르도안 승리, 정치범 감옥에 남는다는 뜻"
이슬람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한 통치 체제는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위해 확고하게 유지돼온 건국이념으로서 세속주의는 건국 100주년인 올해로 종언을 고하게 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이슬람주의자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집권 기간 점진적으로 이슬람 색채를 강화하며 세속주의 기반을 약화하는 데 주력했다.

세속주의의 본산인 군부에 대한 여러 차례 숙청에 이어 2016년 쿠데타 미수 사건 이후에는 군부에 대한 대대적 추가 숙청을 벌인 것은 물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사회 전반을 옥죄었다.

법원과 언론사, 경찰, 교육기관 등 세속주의를 뒷받침해온 조직을 겨냥한 일련의 조처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충성파로 이들 조직을 다시 채웠다.

금지됐던 아랍어 예배와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허용하고 유네스코 세계 유산인 아야 소피아를 박물관에서 이슬람 모스크로 환원했다.

이번 대선 기간에는 야당이 성소수자를 옹호한다고 비판하는 등 노골적으로 이슬람 교리에 기반한 캠페인을 벌였다.

대선을 앞둔 지난 2월 대지진 당시 공포와 공황을 조장한다는 혐의로 온라인 게시물에 대한 검열을 벌이고 수십 명을 구속한 것을 두고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 이후 더욱 강해질 권위주의를 예고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영국 BBC 방송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튀르키예는 국가 기관과 언론에 대한 통제력이 강화되고 반대파에 대한 탄압이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튀르키예 기반 독립 싱크탱크 앙카라 정책센터의 셀린 나시는 BBC에 "에르도안의 승리는 정치범들이 감옥에 남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철옹성 확인한 에르도안, 정치경제 역주행 '마이웨이' 고수할 듯
◇ "인플레이션 완화에 큰 지출…결국 대가 치를 것"
초고물가와 경제난을 초래한 저금리 정책과 중앙은행에 대한 개입 등 비정통적 경제정책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저금리를 통해 생산과 투자, 수출을 늘리고 경상수지를 개선해 물가를 낮춘다는 경제 모델을 고수하고 있으나 최근 수년간 튀르키예 경제는 유례없는 고물가와 리라화 폭락으로 인해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CNN인터내셔널과 인터뷰에서 "선거 이후 내 말을 확인해보라. 금리와 함께 물가가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것은 환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기존 경제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렇다.

물론이다"라고 확언했다.

시장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호언장담과 달리 냉담한 반응이다.

대선 직전 야권 2위 후보가 사퇴해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자 튀르키예 증시가 급등했고, 반대로 1차 투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승리하자 증시 급락으로 인해 거래 중단을 위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튀르키예 경제정책의 왜곡을 지적하면서 "경제와 시장의 변동성 위험이 상당하다"고 짚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선거를 앞둔 에르도안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충격 완화를 위해 큰돈을 쏟아부었다"며 "결국 누군가는 이 청구서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