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열흘 아기와 콘크리트 더미 속 90시간 생존기…네가족 모두 극적 생환
[튀르키예 강진] "암흑 버틴 한줄기 희망은 아기…마침내 멍멍 소리가"
"벽이 무너지고 방이 흔들렸죠. 정신을 차려보니 아래층으로 떨어진 상태더라고요. 돌더미에 갇힌 채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느껴졌어요.품에 안은 아기와 입고 있던 잠옷 밖에는…."

12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은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에서 건물 잔해더미에 갇힌 채 90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여성의 생존기를 이같이 전했다.

네질라 자무즈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33살로, 튀르키예 하타이 지역 남쪽에서 5층짜리 건물 2층에서 남편, 두 아들과 살고 있었다.

"좋은 건물"에서 안전하게 지낸다고 생각했던 네질라는 예고 없이 닥친 지진이 자신의 삶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뒤바꿀 줄을 꿈에도 몰랐다.

네질라는 지진이 덮친 6일 새벽 4시께 갓난아기인 둘째 아들에게 수유를 하느라 깨어있다가 지진이 덮친 순간을 고스란히 지켜봤다고 한다.

그는 "지진이 시작됐을 때 옆방에 있는 남편과 첫째 아들에게 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옷장이 쓰러졌다.

나도, 남편도 움직이는 게 불가능했다"면서 "지진이 심해지면서 벽이 무너지고 방이 흔들리더니 건물 위치가 움직였다"고 악몽 같던 순간을 회고했다.

삽시간에 모든 게 무너지고 지진이 가라앉은 뒤 잔해더미 속에서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이 한층 아래로 떨어진 상태였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자욱한 먼지가 걷힌 뒤에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으며, 그의 옆에 쓰러져있던 옷장이 사방팔방에서 쏟아져내린 콘크리트 무더기를 막아준 덕택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것만 인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남편 이름을 소리쳐 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품 안에 안고 있던 아기와 입고 있던 잠옷뿐이었다고 말했다.

네질라는 고립된 첫날까지만 해도 어떻게 해서든 외부에 구조를 요청하려고 발버둥쳤다.

"누구 없어요? 제 말 들리세요?"라고 소리치고 돌을 부딪쳐 쿵쿵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순간 아무도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너무 무서웠다"고 네질라는 당시를 돌아봤다.

하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이 누워 있는 상황에서도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이 된 것은 둘째 아기가 1월 말 태어나 생후 열흘째인 신생아여서 모유 수유가 가능했으며, 잔해에 갇힌 상태에서 그나마 추위를 덜 수 있었다는 점이다.

네질라는 마음을 바꿔먹고 최대한 체력을 아끼며 버티는 태세로 들어갔다.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려고 소리치는 것을 멈췄으며, 물 한 방울도 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모유를 먹어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히 품안의 아기는 대부분의 시간 잠들어 있었으며, 깨어나 울 때는 모유 수유를 하며 달랠 수 있었다.

아기 이름은 '용기'라는 뜻의 '야으즈'로, 두려움과 절망이 닥쳐올 때마다 엄마를 붙들어준 유일한 희망이 됐다.

적막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됐을 즈음 희미하게나마 멀리서 구조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들려온 것은 구조견이 짖는 소리였다.

하지만 장시간 고립에 탈진해가던 네질라는 기적과 같은 당시 상황마저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다고 한다.

곧이어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괜찮으세요? 괜찮으시면 한번 두드리세요." 네질라와 아기가 갇힌 지 90시간 만이었다.

구조대는 잔해더미에서 모자를 찾아냈고, 암흑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줄기가 네클라를 비췄다.

구조대는 이스탄불에서 온 소방대원이었고, 네질라와 아기를 잔해더미에서 꺼내 들것으로 옮겼다.

구조대는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냐고 물었지만 시간 감각을 잊어버린 네클라는 지진이 덮쳤을 때 생후 열흘이었다고 답할 수 밖에 없었다.
[튀르키예 강진] "암흑 버틴 한줄기 희망은 아기…마침내 멍멍 소리가"
병원으로 옮겨진 네질라는 다른 친척들에게서 앞서 남편, 첫째 아들도 천만다행으로 구조됐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남편과 첫째는 다리 부상으로 멀리 떨어진 병원에 있어서 며칠 뒤에 눈물겨운 재회가 이뤄졌다. 네질라와 아기는 기적적으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네질라는 자신에게 닥친 일이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정확히 입밖으로 꺼내는 게 어렵다고 한다. 그는 "아기가 나를 살렸다"면서 "아기가 그토록 강하지 않았다면 나도 강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네질라의 소원은 단 한가지라고 한다. 아이들이 두번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는 것이다. 그는 "아기가 신생아라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위안"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