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정사·대통령 모욕 금지…"시민 자유를 뒤엎어" 비판 여론
미국도 우려 목소리 전해…외국인 적용에 산업계도 반발
'이슬람법 가까워진' 인니 새 형법에 "민주주의 후퇴" 반발론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졌던 형법을 이슬람법에 가까운 방향으로 대대적으로 개정하자, 새로운 법이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 세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가 이번 형법 개정으로 이슬람 보수주의로 전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인도네시아 국회가 지난 6일(현지시간) 통과시킨 새로운 형법은 혼외 성관계와 혼전 동거, 낙태를 금지하고 대통령과 국가 기관을 모욕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또 사전 허가 없이 시위를 벌이거나 가짜뉴스 확산, 공산주의 등 국가 이념에 반하는 견해를 퍼뜨리는 경우도 처벌하도록 했다.

신성모독죄는 강화됐고 사형제는 존치됐다.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으로 형법이 개정되자 인도네시아 국회 앞에는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형법 개정을 반대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법으로 도덕성을 제한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우스만 하미드 국제앰네스티(AI) 인도네시아 집행 이사는 새로운 법이 "20년 넘게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인도네시아의 발전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라며 "혼외 성관계를 불법화하는 것은 국제법에 의해 보호되는 사생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전국 대학생 단체는 새로운 법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이나 부통령, 국가 기관을 모욕할 경우 처벌하는 조항에 대해 비판과 모욕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없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바유 사트리아 우토모 전국 대학생 집행기구 사무총장은 "우리는 대규모 시위를 통해 법안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줄 계획"이라며 "우선 지역 단체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슬람법 가까워진' 인니 새 형법에 "민주주의 후퇴" 반발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모두가 당할 수 있다'는 의미의 #SemuaBisaKena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새로운 형법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눈과 입을 가린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19년에도 이 같은 내용으로 형법 개정을 준비했지만, 대학생과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시위에 개정 작업을 중단했다.

대신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여러 차례 공청회 등을 진행했다.

하지만 개정된 법은 동성애 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혼외정사 처벌법을 친고죄 형태로 바꾼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언론들도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7일 자카르타 포스트는 1면에 형법 개정 소식을 전하면서 '새로운 형법은 시민의 자유를 뒤엎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또 '보수적으로 전환'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인도네시아는 수십 년 동안 종교적이지도 세속적이지도 않은 국가 지위를 유지해왔지만, 이번 형법 개정으로 종교적으로 전환했다"라며 "우리의 문화적 이념적 다양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도네시아 최대 일간지인 콤파스도 사설을 통해 "법 시행까지 3년이 남았으니 그 안에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내야 한다"라며 시행령을 통해서라도 모호한 조항을 없애고 시민사회가 우려하는 점들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의회가 새로운 형법을 통과시켰지만 새 법은 구체적인 시행령과 시행 규정이 필요해 3년 뒤에나 시행될 예정이다.

새로운 법에 대해 산업계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법이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는 만큼 외국인 투자나 관광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인도네시아 관광 산업 위원회의 부국장인 마우라나 유스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으로 큰 타격을 입은 관광산업이 부활하려는 때 이 법이 나왔다며 "완전히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호주 언론은 인도네시아의 형법 개정 소식을 전하며 '발리 성관계 금지'법이라 이름 붙였다.

인도네시아 최대 관광지 발리에는 연 100만 명의 호주인이 찾으며 이들은 서핑과 해변 파티 등을 즐긴다.

특히 미국도 새 형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성 김 인도네시아 주재 미국 대사는 "개인의 결정을 범죄화하는 것은 많은 기업이 인도네시아에 투자할지를 결정할 때 주요 검토 사항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도 "미국은 그러한 변화가 인권과 기본적 자유 행사에 어떤 영향을 줄지 염려가 된다"면서 "개정법이 그곳을 방문하고 거주하는 미국 시민권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을 두고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고 말했다.

'이슬람법 가까워진' 인니 새 형법에 "민주주의 후퇴" 반발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