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손·멜리토폴 등 점령지서 상습적 고문·구타·감금
러 범죄자 1만6천명 추산…우크라 기소는 겨우 127명
"러, 우크라 남부서도 민간인 대상 전쟁범죄"[국제인권단체]
러시아군이 전쟁으로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에서도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인권단체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는 22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과 자포리자 지역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고문, 전기 충격, 구타, 불법 구금 등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헤르손, 멜리토폴, 베르댠스크 등 도시 10여 곳에서 고문을 당했거나 목격한 사람 71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수집된 사례는 모두 42건이다.

피해자들은 뼈나 이가 부러지거나 심각한 화상, 타박상을 입었다고 호소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 피해자는 러시아군에게 야구 방망이로 맞았고, 다른 사람은 1주일간 구금된 뒤 갈비뼈와 무릎 슬개골이 부러져 거의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또 눈가리개를 하고 수갑을 찬 상태로 지내면서도 물과 음식을 거의 공급받지 못했다고 말한 피해자도 있었다.

억류됐던 사람 중 일부는 러시아 당국에 협조한다는 약속을 한 뒤에야 겨우 풀려났다.

감금 장소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가족에게 통보되지도 않았다.

휴먼라이트워치는 러시아군이 점령지에서 정보를 얻는 한편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주민들이 러시아 점령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범죄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쟁 초기 러시아에 점령된 헤르손에서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광범위한 저항이 있었고, 러시아군이 진압 과정에서 야만적 행동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전했다.

휴먼라이트워치 조사자인 율리아 고르부노바는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남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무법지대로 만들었다"며 "러시아 정부는 전쟁범죄를 즉각 중단해야 하며, 범죄에 책임이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이 보고서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이전에도 러시아군이 민간인 학대를 부정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전쟁범죄 자체를 부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NYT는 짚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는 여러 기관의 보고서로 세계에 알려졌으나,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의 전쟁범죄 실태를 상세히 파악한 조사는 많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헤르손과 자포리자 지역을 되찾기 위해 공세를 퍼붓고 있으며,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처럼 두 곳을 편입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러, 우크라 남부서도 민간인 대상 전쟁범죄"[국제인권단체]
한편 우크라이나는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 1만6천여 명을 조사했으나, 혐의자와 범죄를 연결 짓는 작업에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검찰은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에서 자행된 러시아군 전쟁범죄 증거를 상당히 많이 모았으나, 두려움에 떠는 희생자들의 증언 부족 등으로 인해 조사와 기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경찰은 러시아군 범죄 혐의자 7천500명 이상을 확인했으나, 그중 127명만 기소됐고 구금된 사람은 15명에 불과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