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의회 지도부 면담…"조만간 의회 해산 등 헌법 절차 착수" 전망
우크라 전쟁 와중 국정공백·혼란 불가피…EU "伊 퍼펙트스톰 직면" 경고
'정국 위기' 이탈리아 총리 결국 사임…가을 조기총선 무게(종합)
의회 지지 기반을 잃은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21일(현지시간) 결국 사임했다.

드라기 총리는 이날 오전 상원에 출석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고서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을 만나 사임서를 제출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되 국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당분간 직책을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날 오후 상원의장단을 면담하고 정국 상황을 논의할 예정이다.

공영방송 라이(Rai)뉴스 등 현지 언론은 그가 조만간 의회 해산을 명령하는 등 조기 총선 실시를 위한 헌법적 절차를 시작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총선 시점은 9월 말이나 10월 초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탈리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번도 가을 총선을 실시한 바 없다.

가을 총선이 현실화하면 내년도 예산 수립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드라기 총리는 원내 최대 정당이자 거국 내각의 중심축인 오성운동이 지난 14일 내각이 제안한 민생지원법안의 상원 표결에 불참하자 전격적으로 사임서를 냈고, 마타렐라 대통령은 의회에서 다시 한번 판단을 받아보라는 취지의 요청과 함께 이를 반려했다.

드라기 총리는 전날 상원의 신임안 표결에 앞서 의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호소하며 거국 내각 존속을 타진했으나 연정 구성 정당 간 반목과 대립으로 끝내 물거품이 됐다.

표결은 찬성 95표, 반대 38표로 마무리돼 명목상 재신임을 받았지만, 오성운동에 더해 중도 우파 전진이탈리아(FI), 극우당 동맹(Lega)까지 오성운동과는 연정을 함께 할 수 없다며 투표를 보이콧하며 그 의미를 잃었고 끝내 파국을 맞았다.

정계에서는 조기 총선 실시가 결정될 경우 드라기 총리가 총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이른바 '관리 내각'을 운영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현 내각이 한동안 유지된다 하더라도 국정 운영 동력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에서 그리스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국가부채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등 산적한 경제·사회 현안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탈리아 총리 출신인 파올로 젠틸로니 EU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이탈리아 정치권의 무책임함을 성토하며 드라기 총리의 사임으로 이탈리아는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드라기 총리 내각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온 중도 좌파 정당 민주당(PD) 당수 엔리코 레타 전 총리도 "의회가 국민에게서 등을 돌렸다"면서 "총선에서 국민들이 정치인보다 더 현명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은 드라기 내각 붕괴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대러시아 단일대오에 흠집이 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드라기 총리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더불어 가장 강력하게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온 서방권 정상으로 꼽힌다.

정국 위기가 파국으로 치달으며 금융시장도 출렁였다.

밀라노 증시(FTSE MIB)는 2% 넘게 급락한 가운데 거래되고 있고, 이탈리아와 독일 간 10년 만기 국채 금리 격차(스프레드)도 233bp(1bp=0.01%)까지 확대되며 최근 한달 내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지낸 드라기 총리는 작년 2월 당시 주세페 콘테 총리(현 오성운동 당수)가 이끌던 연정이 붕괴한 작년 2월 마타렐라 대통령에 의해 정치·경제 위기를 타개할 '소방수'로 낙점됐다.

이후 코로나19 사태, 팬데믹에 따른 사회·경제 위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헤쳐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