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40년만에 공개된 과정 석연치 않아…일부 작품은 제작 연도에 의문
'검은 피카소' 바스키아 그림 위작 논란에 FBI 수사 착수
1980년대 미국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해 스물여덟에 요절한 흑인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작품이 위작 시비에 휘말리면서 미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나섰다.

뉴욕타임스(NYT)는 29일(현지시간) FBI 예술 범죄팀이 올랜도 미술관에 전시된 바스키아의 작품 25점의 진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랜도 미술관은 지난 2월부터 '영웅 & 괴물: 장 미셸 바스키아'라는 타이틀로 바스키아의 그림 25점을 전시 중이다.

대부분 지난 40년간 미공개된 작품들로, 미술관 측은 바스키아가 아트 딜러 래리 가고시안의 자택 지하 스튜디오에서 지내던 1982년 말에 그린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NYT는 '검은 피카소'로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바스키아의 작품이 무려 4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전시회 초기부터 작품의 진위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올랜도 미술관장인 에런 드 그로프트에 따르면 바스키아는 이 작품을 가고시안과 상의도 없이 직접 TV 시나리오 작가 새드 멈포드에게 현금 5천달러(약 630만원)에 팔았다.

멈포드가 자신의 로스앤젤레스 지하 창고에 넣어 뒀다 30년간 잊고 있던 이 작품은 2012년 멈포드가 창고 보관료를 낼 수 없게 되면서 빛을 보게 됐다고 그로프트 관장은 설명했다.

작품 25점은 경매에 넘어갔고, 할리우드 스타 부부였던 배우 조니 뎁과 앰버 허드의 이혼 소송에서 허드를 대리해 유명한 로스앤젤레스 변호사 피어스 오도넬이 6점을 구매하는 등 여러 소장자의 손에 들어갔다.

'검은 피카소' 바스키아 그림 위작 논란에 FBI 수사 착수
올랜도 미술관 측은 그림들에서 바스키아의 이니셜을 발견했으며 권위 있는 기관의 인증을 받았다고 밝혔지만,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바스키아를 스타 화가 반열에 올려놓은 가고시안조차 그로프트 관장의 설명에 대해 "현실성 없는 시나리오"라며 의문을 제기했고, NYT는 "사실이기엔 너무 좋은 스토리"라고 지적했다.

특히 NYT는 바스키아가 택배업체 페덱스(FedEX) 포장 박스를 캔버스 삼아 그렸다는 한 작품의 경우 미술관 측이 말하는 작품 제작 연도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페덱스 디자이너에게 문의한 결과, 해당 박스에 적힌 폰트는 1994년 이후부터 쓰였다는 것이다.

1994년은 바스키아가 사망한 지 6년 후다.

FBI는 이처럼 의혹이 제기되자 직접 수사에 착수해 지난달부터 관련자 조사에 들어갔다.

NYT는 "FBI 조사의 구체적인 초점과 대상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짜인 것을 알고도 예술품을 의도적으로 판매했을 경우 연방 범죄가 된다"고 전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인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1980년대 초 혜성처럼 등장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거리화가에서 시작해 팝아트 부흥과 함께 뉴욕 화단 중심부로 진입해 최고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는 자유와 저항의 에너지가 가득한 흑인 정체성이 묻어나는 작품으로 검은 피카소라는 별칭을 얻었다.

바스키아의 작품 '무제'는 지난주 미국 뉴욕 경매에서 8천500만달러(약 1천63억원)에 낙찰됐다.

퍼트남 미술·골동품 감정센터에 따르면 올랜도 미술관이 전시 중인 바스키아 그림이 진품이라면 약 1억달러(약 1천251억원)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은 피카소' 바스키아 그림 위작 논란에 FBI 수사 착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