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고위층은 처벌 주장…'극우전력' 아조우 연대 전범 혐의 조사키로
러시아 손에 넘어간 아조우스탈 수비대 또다른 불씨 될까
우크라이나 남부 요충지인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버티다 러시아에 투항한 우크라이나 병력 수백명의 운명이 관심사로 부상했다.

러시아가 이들의 신병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쟁을 가열하는 또다른 불씨가 될 수 있어서다.

러시아 국방부는 18일 지난 사흘간 이 제철소에 은신했던 우크라이나 병력이 1천명 가깝게 '투항'했다고 밝혔다.

당장 러시아가 이들에게 제네바 협약에 따른 전쟁포로 지위를 인정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러시아는 이들을 '전쟁 범죄 용의자'로 보기 때문이다.

전쟁포로에 대한 처우를 규정한 제3차 제네바 협약은 적군에 생포된 시점부터 전쟁포로로서 인도적 대우를 받아야 하며,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러시아 쪽에선 이들 병력에 대해 심지어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온다.

마리우폴 수비군 상당수가 2014년 극우 성향 민병대로 시작했다가 이후 우크라이나군에 편입된 '아조우 연대' 대원이라는 이유에서다.

러시아는 나치주의를 추종하는 아조우 연대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성향 주민을 대량으로 학살, 고문하는 범죄를 자행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가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명분 중 하나로 내세운 '탈나치화'는 러시아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 내 강경한 민족주의 세력을 겨냥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로선 투항병들을 전쟁포로로 대우하는 대신 법정에 세워 처벌하는 것이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런 논리에 맞고 전쟁이 정당화된다.

실제로 이런 주장을 '실증'하려는 절차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대법원은 이달 26일 아조우 연대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할지를 놓고 심리를 진행하기로 했고,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도 투항병들을 상대로 돈바스 지역의 민간인 대상 범죄 연루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지 않고 포로를 처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전쟁범죄 재판인 만큼 이러한 움직임은 러시아에 신병이 넘어온 이들을 이같은 혐의로 기소하려는 사전 작업으로 해석된다.

러시아 손에 넘어간 아조우스탈 수비대 또다른 불씨 될까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뒤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은 독립을 선언하고 이번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정부군과 8년간 산발적인 교전을 이어왔다.

유엔은 이 과정에서 최소 1만4천명이 숨지고 200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고 추산했는데, 러시아는 이 과정에서 아조우 연대 등이 전쟁범죄를 저질렀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제니 S. 마르티네즈 스탠퍼드대 법학 교수는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러시아 정부가 붙잡은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국제 인권법을 위반했다는 타당한 주장을 내놓을 수 있느냐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자료 등에 따르면 아조우 연대 일부 병사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반군과의 분쟁이 발발한 직후 민간 주택을 약탈하거나 친러 성향 주민에 대한 고문과 성적 학대 등에 관여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조우 연대가 정규군으로 편입되면서 인적 구성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투항병 가운데 사건 관여자들이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서다.

전범으로 기소하더라도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게 한다면 그 역시 제네바 협약 위반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소속 변호사 아쉴링 라이디는 "그들은 전쟁포로"라며 "그 외의 어떠한 정의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이날 러시아에 국제적십자의 면회를 즉각 허용할 것을 촉구하면서 "포로로서 그들의 운명을 심각히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런 요구에도 러시아가 포로 교환 협상을 거부하고 전범 혐의로 실제 기소한다면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서방과의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히피 영국 국방차관은 L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군) 포로 처형 등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이번 전쟁에서 충분히 많은 참상을 봤다"며 "서방은 이런 종류의 참상을 전적으로 규탄한다는 점을 매우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