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안심하라' 발표에도 일부 시민 늦은 시간까지 생필품 사재기
[르포] "오늘 당장 봉쇄될지도"…베이징 코로나 불안감 가중
"이 도시가 어느 순간 봉쇄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요?"
13일 오전 중국 수도 베이징 한국인 밀집 지역 왕징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교민 최모 씨는 날로 강화되는 베이징의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날 밤 지인들과의 단체 채팅방에서 다른 사람들은 최소 2∼3주 동안 먹을 수 있는 쌀, 물, 고기 등을 샀다는 글을 보고 이날 마트가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달려왔다고 했다.

최씨는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오늘 당장 베이징이 봉쇄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며 "상하이도 봉쇄는 없다고 했지만 지금 한 달 이상 봉쇄돼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웨이보(微博)와 위챗(微信)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전날 베이징이 사흘간 택배와 배달을 중단하는 '징모'(靜默)가 시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대형마트마다 식료품을 사재기하려는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르포] "오늘 당장 봉쇄될지도"…베이징 코로나 불안감 가중
이에 베이징 방역 당국은 "베이징의 민생물자 공급은 안정적이고, 택배 및 배달 역시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화했지만, 사재기를 멈추지는 못했다.

일부 대형마트는 늦은 시간까지 몰려드는 손님 때문에 폐점 시간을 한참 지나서까지 연장 영업을 하기도 했다.

마트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꾀가 많은 토끼는 3개의 굴을 준비한다'(狡兎三窟·교토삼굴)는 중국 속담을 언급한 뒤 "혹시 모를 봉쇄에 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봉쇄가 안 되면 좋고, 봉쇄되면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안심하라는 당국의 발표에도 시민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상하이 학습효과 탓이다.

상하이시는 봉쇄는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가 봉쇄 시작을 불과 몇 시간 남긴 지난 3월 27일 심야에 봉쇄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그렇게 시작된 봉쇄가 이날까지 47일이 됐고, 소셜미디어에는 먹을 음식이 없다거나 아이 해열제가 없다며 도움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외침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방역 조치가 연일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베이징의 봉쇄 우려를 높이고 있다.

이달 초 40여 곳으로 시작된 지하철역 폐쇄는 열흘 사이 80여 곳으로 늘었고, 감염 정도가 심한 일부 지역은 시내버스에 이어 택시와 공유 차량 운행도 중단됐다.

[르포] "오늘 당장 봉쇄될지도"…베이징 코로나 불안감 가중
쇼핑센터와 극장 등은 이미 오래전에 폐쇄됐고, 식당 내 식사 금지도 2주 이상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역사의 상징인 자금성도 운영을 중단했다.

지난달 25일 관리통제구역으로 지정돼 봉쇄된 차오양구 판자위앤(潘家園)에 사는 한 중국인은 "봉쇄 초기에는 아파트 단지 산책은 가능했지만, 지금은 택배 수령과 PCR(유전자증폭) 검사 때가 아니면 문밖으로 나갈 수 없다"며 "전수 검사에서 모두 음성이 나오면 봉쇄를 해제한다고 했지만, 감염자가 계속 나오면서 20일 가까이 아파트에 갇혀 지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베이징 시민들에게 PCR 검사는 일상이 됐다.

지난달 25일 차오양구에서 시작된 전 주민 대상 PCR 검사는 베이징 전역으로 확대돼 베이징 시민은 최소 10차례 이상 검사받았다.

전수 검사는 숨어 있는 감염자를 찾아내 조기에 격리함으로써 감염을 확산한다는 '다이내믹 제로 코로나' 정책의 핵심이다.

베이징시가 전날에도 인구 90% 이상이 사는 12개 구 전 주민을 대상으로 13∼15일 매일 PCR 검사를 하기로 하면서 이날 오전에도 아파트마다 설치된 PCR 검사장에는 긴 줄이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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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아이들과 함께 PCR 검사를 받으러 간다"며 "조금만 늦으면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봉쇄 건물이 늘어나고 새로운 방역 조치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주민들의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PCR 검사장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다른 나라들은 해외여행도 가는 등 일상생활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중국은 코로나19 초기보다 방역 정책이 더 엄격해졌다"며 "도대체 어느 나라 방역 정책이 맞는 건지 헷갈린다"고 토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