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GDP중 국방비 1.3%→2% 상향에도 '과거사 사과'에 우호적 여론
일본, '은밀한' 군비 증가엔 주변국 우려 시선
2차대전 패전국 獨·日에 군비 증강 '기회'된 우크라 전쟁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군사력 증강에 나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안보 지형이 격변하고 아시아에서도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증가하면서 양국은 패전의 멍에에서 벗어나 공공연하게 군비를 확장할 기회를 맞이했다.

그동안 독일과 일본은 자체 군사력 증강을 자제하고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집단 안보에 의존하면서 경제 발전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이제 양국은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는 서방 군사력의 핵심 전력으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러시아의 군사적 도발로 유럽에서 '신냉전'이 촉발되면서 독일은 사실상 재무장을 선언하고 지정학적 강자로서 역할을 할 것임을 천명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2월 말 독일 국방정책 혁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러시아의 침공은 전후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유럽 역사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소극적인 대응으로 나토 전선의 '약한 고리'로 평가받던 독일은 전쟁 이후 변모했다.

독일 정부는 대전차 무기 1천 정과 군용기 격추를 위한 휴대용 적외선 유도 지대공 '스팅어 미사일' 500기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데 이어 그동안 거부한 중화기 제공을 허용했다.

독일 KMW(크라우스-마페이 베그만)사의 게파르트 장갑대공포 50대를 우크라이나에 직접 수출할 수 있도록 승인한 것이다.

KMW는 이 밖에 장갑유탄포 100대도 우크라이나에 수출할 예정이다.

독일 군수업체 라인메탈이 우크라이나에 마르더 장갑차 100대를 공급하는 방안도 곧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2차대전 패전국 獨·日에 군비 증강 '기회'된 우크라 전쟁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20억 유로(약 2조 7천억원)로 늘리기로 한 데 이어 중무기도 추가로 제공할 계획이다.

전쟁 발발 후 독일은 군비증강에 착수했다.

숄츠 총리는 독일군 현대화를 위해 올해 특별 연방군 기금을 설립, 1천억 유로(약 135조 원)를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앞으로 해마다 독일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독일이 지난해 GDP의 1.3%인 560억 달러(약 70조8천억 원)를 군비로 지출했다고 밝혔다.

독일이 그동안의 금기를 깨고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와 중화기를 제공하고 과감하게 군사력을 증강하는 데 대해 미국과 나토는 환영하고 있으며 폴란드 등 주변국도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충분히 사과하고 보상함으로써 군사적으로도 유럽 주도국의 자격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본의 군비 증강은 다소 은밀하게 진행되면서 주변국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일본은 '평화 국가'의 굴레를 벗어나 재무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분석 기사에서 일본 정부와 정치권의 최근 행보를 들어 일본이 '전쟁하지 않는 평화국가'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탄복과 헬멧 등 군사 장비 지원을 뚜렷한 징후로 거론했다.

일본은 군사물자 수출을 허용하는 규칙인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의 운용지침을 수정해 이를 결정했다.

NYT는 "미국과 유럽의 무기 제공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평화국가의 정체성에서 멀어지는 과정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은 결정적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8일 러시아 외교관 추방과 신규 러시아 제재를 발표하며 "속도감 있는 철저한 국방력 증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러시아의 침공,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증대, 중국의 군사력 증강 등을 이유로 일본의 타격 능력을 강화할 것을 제의했다.

자민당은 당초 '적 기지 공격 능력'이라는 명칭을 제안했으나 선제공격 논란을 피하기 위해 '반격 능력' 보유를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원거리 타격 수단을 보유해 적의 미사일 발사기지 등을 파괴하는 능력을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2차대전 패전국 獨·日에 군비 증강 '기회'된 우크라 전쟁
자민당은 방위비 증액도 제안했다.

이 제안은 GDP의 2% 이상을 군비에 투입하고 5년 이내에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2022년도 일본 방위비는 본예산 기준으로 5조4천5억엔(약 53조8천억원)으로 GDP의 0.96%다.

나토 회원국 방위비에는 연안 경비 예산 등도 포함돼 있어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일본의 방위비는 지난해 GDP 대비 1.24% 수준이다.

SIPRI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GDP의 1.1%인 541억 달러(약 67조6천억 원)를 국방비로 썼다.

이는 전년보다 7.3% 증가한 것으로 1972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일본이 국방비로 GDP의 1% 이상을 쓴 건 태평양 전쟁 이후 처음이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군비 경쟁이 가속하면서 전 세계 군비 지출이 증가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여파에도 지난해 전 세계 군비 지출이 7년 연속 증가해 처음으로 2조 달러(약 2천501조원)를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SIPRI의 연례 군비 통계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군비는 2020년보다 0.7% 증가했고 2012년보다는 12%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국방비를 많이 지출한 나라는 미국, 중국, 인도, 영국, 러시아로 이들 5개국이 전 세계 군비 지출의 62%를 차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