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미·중 대립에 전략적 선택 다각화 추구…중국과 협력 모색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EU·중국 관계 긴장…마크롱 리더십 주목
중국은 왜 마크롱에 '전략적 자율성' 기대하나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중국은 유럽연합(EU)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EU 또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다각화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EU는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인권 문제를 비롯해, 무역 갈등 등 긴장 요인에도 중국과 교역을 확대하고 나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까지 거론하고 있다.

중국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대만 문제 등 외교적 갈등에 대응하는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유럽을 중시해야 할 필요가 생겨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다.

중국은 24일 재선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에서 벗어나 독립성과 자율성을 추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5일 마크롱 대통령과 통화에서 그의 연임을 축하하며 "중국과 프랑스는 모두 독립성과 자율성의 전통을 가진 위대한 나라"라고 말했다고 중국 언론이 전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마크롱 대통령과 통화에서도 "최근 국제적으로 발생한 몇 가지 큰일들은 프랑스가 EU의 전략적 자율성을 주장한 것이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EU 정책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중국 측의 이런 태도를 놓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추 역할을 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물러난 뒤 EU의 새로운 파트너로 마크롱 대통령을 선택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딩춘 푸단대 유럽연구센터 소장은 "마크롱의 재선은 중국에 좋은 소식"이라며 "그는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했고 메르켈 이후 EU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이다.

프랑스는 중국 문제에서 미국을 단순히 따르지 않을 것이고 자율성을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왜 마크롱에 '전략적 자율성' 기대하나
프랑스가 올해 상반기에 EU 의장국으로 활동하는 것을 계기로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현안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EU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재임 16년간 사실상 유럽의 지도자 역할을 한 메르켈 전 총리가 지난해 말 물러난 뒤 마크롱은 '포스트 메르켈' 시대의 유럽 지도자로 떠오르며 유럽 리더십의 공백을 메웠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은 위기 해결사를 자처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등 서방 지도자와 긴밀하게 협의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상과 수시로 연락하거나 직접 만났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EU 의장국 수임 후 첫 유럽의회 연설에서 "유럽은 자체적인 방위 능력을 증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 솔직한 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방위를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가 진정한 유럽의 군대를 갖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유럽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과 러시아 간 협상에서 EU가 배제된 상황을 계기로 EU 자체의 방위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상반기에 EU의 주권을 강화하고 나토에 대한 방위 의존을 줄이는 등 나토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토 창설 멤버인 프랑스는 1960년대 중반 나토군에서 병력을 철수했다.

그 이후 프랑스는 나토의 정치기구에만 참여할 뿐 나토와는 별개인 독립적 방위 기구를 추진해왔다.

EU 집행위원회 보안 문서에 따르면 EU는 2025년까지 병력 5천명 규모의 유럽 합동군을 창설할 계획이다.

유럽 합동군 창설 계획 초안은 육·해·공군력을 모두 포함하는 신속대응군이 적대적인 환경에서 구조·대피, 또는 안정화 작전과 같은 모든 범위의 군사적 위기관리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을 담았다.

EU의 전략적 자율성 추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중국이 러시아 편에 서면서 서방과 대립하고 이 여파로 EU와 중국 사이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개전 이후 서방이 러시아에 대해 강력한 제재에 나서는 데 반해 중국은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물론,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제재 효과를 무력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학살 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중국은 러시아 측의 '조작' 주장에 동조하면서 러시아를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중국은 왜 마크롱에 '전략적 자율성' 기대하나
1일 열린 EU·중국 화상 정상회의에선 경고 메시지가 오가며 갈등이 표출됐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중국 측에 러시아가 전쟁을 수행하거나 서방의 제재를 피하는 것을 지원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이는 유럽에서 중국에 대한 평판 손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의견 불일치와 갈등을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국의 기본 입장이라며 러시아 제재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EU의 전략적 자율성 확보 노력도 주춤하는 모습이다.

유럽이 중국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자체 방위력을 증강하는 등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제한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일방적인 외교·안보 정책으로 서방의 안보 축인 이른바 '대서양 동맹'(미국과 유럽의 동맹)이 크게 흔들렸으나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을 비롯한 전통적 동맹과 관계 복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더욱이 이번 전쟁으로 유럽 안보 지형이 격변하면서 대서양 동맹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서방과 러시아·중국 진영 간 대결 양상이 나타나면서 유럽 안보에 대한 중국의 위협도 부각되고 있다.

나토는 6월 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나토 안보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을 정식 의제로 채택하기로 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중국이 러시아와 점점 긴밀하게 협력한다면서 중국의 위협을 나토의 안보 환경 평가와 전략·대응 방법 등을 담은 '전략 개념' 문서에 처음으로 포함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안보 환경이 급변한 상황에서 EU가 미국의 '동맹 복원' 움직임과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