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도 구애하는 아날로그칩 업체…반도체 부족에 200조원 몸값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월 실적 발표회에서 부품 부족 때문에 아이폰과 다른 제품을 충분히 만들지 못해 수십억 달러의 매출 기회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쿡은 첨단 반도체 관련 문제는 없지만, 아날로그 칩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많은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아이폰 같은 제품이 부족했던 한 요인이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의 부품이라고 애플 공급망 관련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25일 보도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칩 메이커인 TI의 시가총액은 1천700억 달러(약 202조원)로 폭등했다.

아날로그 칩은 온도, 소리 같은 실제 세계의 신호를 디지털 세계의 0과 1로 변환하거나 반대로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준다.

삼성전자나 인텔 등의 첨단 디지털 칩처럼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개당 몇 달러짜리 아날로그 칩의 부족 사태는 아이폰에서 포드의 F-150 픽업트럭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의 공급망을 타격했다.

최신 하이엔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약 50개 칩 가운데 첨단 제품은 4∼5개뿐이며 나머지에는 배터리 충전 관리나 디스플레이 전력 공급 등의 아날로그 칩이 포함된다.

TI는 1930년 창립된 세계 최대 아날로그 반도체 업체다.

이 회사 엔지니어 잭 킬비가 1958년 집적회로를 발명했다.

미국 소비자에게는 1970년대부터 공학용 계산기로 알려졌는데 여전히 계산기를 만든다.

하지만 지난 1년여간 시가총액 급등은 아날로그 칩 시장 지배력 덕분이다.

대만 리서치회사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I는 올해 세계 아날로그 칩 시장의 17∼20%를 점유했다.

대만 하드웨어 업체 에이수스는 지난달 배터리 사용을 관리하거나 음향 효과를 증폭시키는 아날로그 칩의 부족으로 노트북 조립 라인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TI를 지칭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TI 외에 주요 아날로그 칩 제조사로 아날로그 디바이시스, 인피니온,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이 있다.

트렌드포스는 이달 보고서에서 아날로그 칩 제조사들이 자동차 분야 고객사로부터 받은 주문이 내년 말까지 밀려있다고 밝혔다.

소비자 가전 업체들도 수개월을 기다리고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날로그 칩 부족난이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지만, 제조사들은 생산 능력 확대에 신중하다.

TI 관계자는 "어느 시점에는 고객사들의 제품이 과잉 생산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 업계에 사이클이 생긴다"라면서 "사이클이 끝난다고 해도 우린 놀라지 않을 것이다.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TI는 내년 하반기 미 텍사스주 리처드슨에 60억 달러짜리 새 공장이 들어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