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진영 출마 0명…'백지투표' 운동 속 당국 삼엄한 경계
홍콩 선거제 개편후 첫 의회 선거…투표율·무효표에 관심
중국이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기조로 홍콩의 선거제를 전면 개편한 이후 첫 입법회(의회) 선거가 오는 19일 실시되면서 투표율과 무효표에 관심이 쏠린다.

2014년 '우산혁명'에 이어 201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이끌었던 민주진영에서 아무도 후보를 내지 않은 까닭에 이번 선거에 대한 홍콩인들의 관심은 낮다.

친정부·친중 진영 일색의 후보들이 출마한 데다 선거공약도 천편일률, 대동소이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유세 열기는 커녕 선거가 치러지는지 조차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홍콩 언론은 전한다.

이런 가운데 해외로 도피한 민주진영 인사들을 중심으로 백지투표 운동이 벌어지자 홍콩 당국은 선거법 위반이라며 지금까지 10명을 체포했다.

당국은 또 선거당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1만여명의 경찰 인력을 620개 투표소에 배치해 어떠한 불미스러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지난 9월 마카오 입법회 선거가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것처럼, 이번 홍콩 입법회 선거도 투표율이 낮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홍콩 선거제 개편후 첫 의회 선거…투표율·무효표에 관심
◇ 역대 가장 관심 낮은 입법회 선거…90명 선출에 153명 출마
이번 입법회 선거는 중국이 지난 3월말 홍콩 선거제를 개편한 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입법회 선거로 총 90명의 의원을 뽑는다.

직선 의석수가 기존 35석에서 20석으로 줄었고, 친중 진영이 장악한 선거인단(선거위원회)이 뽑는 의석이 40석 신설됐다.

나머지 30석은 업계 간접선거를 통해 뽑는 직능대표 의석이다.

범민주진영에서는 자격심사위원회 설치와 직선출 의석수 축소 등에 반발해 아무도 후보를 내지 않았다.

특히 홍콩 제1야당인 민주당이 입법회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은 것은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후 처음이다.

주요 민주진영 인사들이 대부분 2019년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기소되거나 실형을 살고 있는 데다, 출마를 희망해도 정부 관리들로 꾸려진 자격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야권에서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현재 홍콩 입법회에는 지난해 11월 민주진영 의원들이 동료 의원 4명의 자격 박탈에 항의해 총 사퇴하면서 친중 진영만 남아있다.

차기 입법회도 친중 진영으로만 채워지게 되자 많은 홍콩인들은 일찌감치 입법회 선거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는 반응이다.

민주진영 지지자들은 뽑을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친중진영에서는 야권과 경쟁이 없다는 이유로 과거만큼 입법회 선거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홍콩 언론은 풀이했다.

앞서 선거제 개편 후 지난 9월 처음 실시된 선거인 선거인단 선거에서는 친중 진영 후보가 당선인의 99.7%를 차지했다.

당시 364명을 뽑는 선거에 예년보다 훨씬 적은 412명이 출마했고, 당선자 중 자신을 친중 진영이 아니라고 홍보한 후보는 단 1명 뿐이었다.

홍콩 선거제 개편후 첫 의회 선거…투표율·무효표에 관심
◇ 당국 투표 연일 강조…접경지대에 첫 투표소 설치
홍콩 정부는 투표 당일 지하철과 버스 운임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등 시민들의 투표를 연일 독려했다.

또 사상 처음으로 중국과 접경지대에 투표소를 설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격리 정책으로 투표권 행사에 제약이 따르는 중국 땅 거주 홍콩인들을 위한 이례적인 조치다.

흥위엔와이(香園圍), 로우(羅湖). 록마차우(落馬洲) 등 중국 선전(深) 과 접경지역 출입경 사무소 3곳에 투표소를 설치했으며, 중국 선전에 거주하는 홍콩인들은 선거일에 이들 투표소에 와서 투표하고 바로 중국 땅으로 돌아가면 별도로 격리를 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지난 5월 홍콩 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중국 땅에 거주하는 투표권을 가진 18세 이상 홍콩인은 약 37만명으로 집계됐다.

홍콩 정부는 이번 접경지대 투표소에서 최대 11만명이 투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지난 8일 투표 희망자 사전 접수 마감 결과 2만2천130명만이 선거 당일 투표를 하겠다고 신청했다.

중국 정부의 홍콩 책임자도 투표를 독려했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의 샤바오룽(夏寶龍) 주임은 지난 6일 '홍콩의 중국 개혁개방 참여'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홍콩 입법회 선거를 두고 "투표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굳건한 신뢰와 번창하는 국가에 대한 희망, 홍콩의 번영과 안정에 대한 바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이에 대해 이반 초이(蔡子强) 홍콩중문대 정치행정학 선임 강사는 명보에 "홍콩 선거를 불과 2주 앞두고 중국 국무원 고위 관리가 선거와 관련된 연설을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이는 중국 정부가 투표율을 포함해 홍콩 입법회 선거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 진영 정치인 21명이 선거 출마 자격을 박탈당한 채 9월 12일 치러진 마카오 의회 선거의 투표율은 1999년 마카오가 포르투갈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최저 수준인 42%에 그쳤다.

이는 직전인 2017년 선거 때의 투표율 57%보다 15%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또한 백지투표가 3천141표로 4년 전 선거 때의 922표보다 3배 이상 늘어났으며, 무효표는 4년 전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홍콩프리프레스(HKFP)는 전했다.

홍콩 선거제 개편후 첫 의회 선거…투표율·무효표에 관심
◇ 백지투표 운동에 2명 기소…불법 무기 소지 10명 체포
홍콩 정부는 선거와 관련해 어떠한 불법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홍콩 반부패 수사 기구인 염정공서(廉政公署·ICAC)는 지난 16일 백지투표를 독려한 혐의로 체포된 10명 중 2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해외로 도피한 테드 후이 전 입법회 의원의 백지투표 촉구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퍼다 나른 혐의를 받는다.

앞서 염정공서는 후이 전 의원과 야우만 전 구의원에 대해 백지투표나 투표 거부 운동을 펼친 혐의로 지난달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다만 둘은 현재 각각 호주와 영국에 머물고 있다.

후이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들이 백지 투표를 하도록 하는 것만이 홍콩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실용적 저항"이라고 말했다.

또 야우 운동가는 페이스북에서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가 친정부 진영이며, 유권자들은 표를 행사할 경우 투표 기계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콩은 선거법 개정을 통해 투표 방해나 무효표 독려 행위를 할 경우 최대 3년 이하 징역이나 20만 홍콩달러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했다.

홍콩 경찰은 또 지난 14일 공기총 등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10명을 체포했다면서 이들이 입법회 선거를 방해할 의도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존 리(李家超) 홍콩 정무부총리 지난 17일 "홍콩 유권자들은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의 원칙을 충실히 이행할 역대 가장 많은 90명의 입법회 의원을 선출하게 된다"며 "투표를 하고 선거가 성공적으로 치러지게 해 선거를 방해하려고 했던 이들이 목표를 이루지 못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