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수입 365억원 1위…마오쩌둥 아들 영웅화
국경절 맞아 애국주의 자극…관영매체 '항미원조 정신' 강조
중국서 돌풍 '항미원조' 영화 봤더니…역사 미화 시도

중국에서 역대 최대 제작비를 들여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을 다룬 영화 '장진호'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애국주의를 고조시키고 있다.

'항미원조 전쟁'은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뜻으로 중국이 자국군이 참전한 한국전쟁을 일컫는 말이다.

'장진호'는 국경절 황금연휴(1∼7일)를 하루 앞둔 열사기념일인 지난달 30일 개봉했다.

이 영화는 상영 첫날 입장수입이 2억 위안(약 365억원)을 돌파하면서 1위에 올랐다.

지난해 30억 위안 넘는 최종 박스오피스 수입을 올린 '팔백'(八佰)을 제치고 전쟁영화 개봉 당일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세웠다.

'장진호'에는 중국 영화 사상 최대인 13억 위안(약 2천3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참여 인원은 1만2천명에 달한다.

중국 영화업계에서는 '장진호'가 '특수부대 전랑(戰狼) 2'의 입장 수입 56억9천만 위안(약 1조원)을 넘어 역대 흥행 영화 1위에 등극할 수도 있다고 기대를 걸고 있다.

'패왕별희'의 천카이거(陳凱歌)와 홍콩의 유명 감독 서극(徐克) 등 3명이 공동 연출했다.

'전랑' 시리즈의 우징(吳京)과 '소년시절의 너'의 이양첸시가 형제로 출연했다.

상영시간 176분의 대작인 이 영화는 한국전쟁의 결정적 전투 가운데 하나인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개마고원 장진호 일대까지 북진했던 미 해병1사단(1만5천명)이 중공군 제9병단 소속 7개 사단(12만명)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처했다가 17일만에 포위망을 뚫고 철수한 전투를 일컫는다.

중국은 장진호 전투를 대대적인 승리라고 내세우지만, 사상자는 중공군이 4만8천명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1만8천명)보다 훨씬 많았다.

중공군 제9병단은 장진호 전투에서 큰 내상을 입고 후방으로 철수해 3개월간 부대를 재편성해야 했다.

연합뉴스는 개봉 첫날 베이징의 '장진호' 상영관을 찾았다.

영화는 참전의 당위성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인다.

미군이 38선을 넘은 것은 중국의 안보를 위협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압록강 이북의 북중 접경 지역이 미군 폭격의 피해를 본 장면도 보여준다.

극 중에서 1950년 10월 5일 마오쩌둥(毛澤東)은 중국 인민지원군의 총사령관을 맡게 되는 펑더화이(彭德懷)에게 "수십 년, 100년의 평화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마오쩌둥은 회의에서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이라는 성어로 중국군 참전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항미원조 보가위국'(保家衛國, 집과 나라를 지킨다)이라는 말이 나온다.

중국서 돌풍 '항미원조' 영화 봤더니…역사 미화 시도

영화는 철저히 중국의 시각에서 전쟁을 다룰 뿐만 아니라 역사 미화도 시도한다.

마오쩌둥의 아들인 마오안잉(毛岸英)은 가장 인상적인 영웅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나온다.

영화 속에서 마오안잉은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자 다른 사람들은 대피했는데도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지도를 챙기러 작전실에 들어갔다가 결국 폭탄이 떨어져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됐다.

이어 영화는 눈발 속에 서성거리며 고뇌하는 아버지 마오쩌둥을 보여준다.

마오안잉의 죽음은 오랜 논쟁거리였다.

그가 막사에서 불을 피워 계란 볶음밥을 하다 연기가 연합군 폭격기에 포착돼 폭사했다는 설이 있는데 중국 공산당은 지난 7월 10가지 '헛소문' 리스트에서 이를 부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앞서 중국이 공산당 100주년을 맞아 과거사 미화의 속도를 내고 있다면서 마오안잉이 계란 볶음밥을 만들다 폭격을 맞았다고 적힌 중국군 장교의 비망록은 2003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공식 발간한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마오안잉은 펑더화이가 만류하는데도 강력한 참전 의지를 피력하고, 이를 본 마오쩌둥이 펑더화이에게 자기 아들을 데려가라고 하는 장면도 영화에 있다.

마오안잉은 '영웅이 되려면 미군 20명은 죽여야 한다'는 병사의 말에 "참전한 사람은 누구나 영웅"이라는 말도 남긴다.

영화에는 남북한 군인은 전혀 나오지 않으며 북한 주민도 등장하지 않는다.

미중 갈등이 수년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군과 중국군의 처절한 전투에만 집중했다.

영화 시작 50분이 지나서야 중공군 압록강을 넘는다.

중공군 9병단은 낮에는 눈 속에 몸을 숨겼다가 밤에 산 능선을 타면서 장진호 부근으로 이동해 미군을 포위한다.

중국서 돌풍 '항미원조' 영화 봤더니…역사 미화 시도

미군이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파티를 즐길 때 중국군은 하루에 감자 하나로 주린 배를 달래며 전투를 준비한다.

중국군은 미군의 정찰기와 폭격기뿐만 아니라 영하 40도에 이르는 혹한과도 싸운다.

갓 병사가 된 주인공이 얼어붙은 감자를 베어 물다 이가 부러질 정도다.

본격적인 장진호 전투는 영화 시작 2시간을 넘어서야 시작된다.

1950년 11월 27일 중국군은 장진호 인근의 신흥리에 있는 미군을 기습 공격한다.

미군은 압도적인 무기를 갖추고도 무기력하게 무너지지만, 애국심과 투지로 무장한 중공군은 목숨을 서슴없이 내던지는 것을 신파조로 그렸다.

미군 장군이 흥남 부두로 후퇴하다 총을 든 채 얼어 죽은 중국 병사들을 발견하고 경례를 한 뒤 "이런 강한 군대를 상대로는 우리가 이기기 힘들다"고 말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는 장진호 전투가 "전쟁의 최종 승리의 토대를 닦았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더욱 새로워진다'는 자막을 띄운다.

적지 않은 중국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영화 속 병사들의 희생에 감동해서 울었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상영 도중 화장실을 갔다 올 만큼 영화가 길어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중국 일부 누리꾼은 영화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고 치켜세웠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장진호' 띄우기와 함께 항미원조 정신과 애국심을 강조하고 나섰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국가감찰위원회가 주관하는 중국기검감찰보는 '장진호'의 항미원조 정신이 중국인들을 격동시켰다고 전했다.

장진호는 중국의 국경절과 맞물려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한껏 고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연휴에는 '나와 나의 부모 세대'라는 또 다른 애국주의 영화도 개봉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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