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주간 유인물, 시장 등서 은밀 배포…'검문검색 걸릴라' 받자마자 숨겨
저항시에 게릴라전 전술도 실려…SMS 정보지·FM방송도 시민 '눈과 귀' 역할

군부 쿠데타 이후 80여 일이 지난 미얀마는 인터넷 '암흑' 상태나 마찬가지다.

휴대전화 모바일 데이터와 무선 인터넷 서비스는 완전히 차단됐다.

유선 인터넷 서비스만 가능한데 그것도 오전 1~9시에는 먹통이다.

정보를 제때 접하지 못하니 시민들로서는 불안과 답답함이 적지 않다.

이러자 민주진영은 최근 유인물을 통해 시민들에게 현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다.

"인터넷 끊겨도 유인물·라디오로 군부만행·시민저항 알아요"
기자도 최근 알고 지내던 한 시장 상인으로부터 이들 유인물을 전달받았다.

1988년 민주화 운동 당시 등사판 전단이 있었던 것처럼, 프린터로 유인물을 만들어 시장 등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시민들에게 배포되고 있다는 게 상인의 얘기였다.

디지털 시대에 맞게 PDF 파일 형태로 SNS에 올리면 민주진영 활동가들이 소규모로 인쇄해 지역별로 배포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현재 시민들이 받아볼 수 있는 민주진영 유인물은 3개 정도로 알려졌다.

"인터넷 끊겨도 유인물·라디오로 군부만행·시민저항 알아요"
3월 말 창간된 '씨또'(Si Thoe·앞으로)가 가장 먼저 발간된 주간 유인물이다.

8쪽짜리다.

이번 주에 발행된 4호에는 지난 16일에 구성된 국민통합정부(NUG) 주요 인사들의 사진이 실려 있다.

NUG는 군사 정권에 맞서기 위해 작년 총선에서 당선된 이들 및 반군부 시위 주도단체 등 민주진영과 소수민족 무장조직 주요 인사들이 연합해 구성했다.

이외에 '인터넷도 끊고 모든 것들을 다 끊고 있는데 이제 끊을 수 있는 건 목밖에 없다'는 내용의 만평, 시위하다 숨진 이들을 기리는 '그날들'(Edie Ney Dway)이라는 기사도 눈에 들어왔다.

총으로 짓밟은 민주주의를 국민에게 되돌려줄 것을 촉구하는 '권좌에서 내려오라'(Palin Paw Ga Sin)라는 저항시도, 매년 열리는 띤잔(Thingyan) 물 축제 당시 공연되던 전통 시사풍자 마당극 딴잣(Than Gyat)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QR코드도 각각 실려있다.

"인터넷 끊겨도 유인물·라디오로 군부만행·시민저항 알아요"
4월 1일에 창간된 몰로토프(Molotov·화염병)는 한 주에 12면씩 발행된다고 한다.

기자가 받아 본 제3호에는 '봄의 혁명'을 다룬 두 편의 시와 함께 '게릴라전에 관한 기본 전투 기술'과 '전술 노트'라는 제목의 글도 실려 있었다.

화염병이라는 제호에 어울리게 투쟁 강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유인물이라 할 수 있다.

미얀마군의 유혈 진압이 그 도를 더하는 것에 맞서 일부 지역에서 주민들이 사냥용 총으로 무장을 하고 자위에 나서는 상황과도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터넷 끊겨도 유인물·라디오로 군부만행·시민저항 알아요"
4월 5일 창간된 '봄의 목소리'(The Voice of Spring)는 매일 A4 용지 앞뒤로 인쇄돼 나온다.

설립자이자 편집장인 코 나잉(가명)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현지 온라인 매체 미얀마 나우와 독립 미디어의 주요 뉴스를 모아 매일 유인물을 만든다"고 말했다.

코 나잉은 "한 사람이 많이 전달할 수는 없어서 100~200부 정도를 전달하고 있다"며 '봄의 목소리'의 목표는 "미얀마의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이런 전단들은 은밀하게 전달되고 시민들도 이를 받아 보고 바로 숨긴다.

군경의 검문 검색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자칫 이를 지니고 있다가 발각되면 곤경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SNS에는 차를 타고 가다 검문 검색을 당하던 중 전단이 발견되자 근처 군경들이 우르르 몰려왔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다행히도 선교용 전단이어서 화는 면했지만, 군경도 민주화운동 유인물에 민감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화였다.

"인터넷 끊겨도 유인물·라디오로 군부만행·시민저항 알아요"
인터넷 '암흑' 상황에서 정보 공백을 메워주는 것은 이런 유인물뿐만이 아니다.

비둘기라는 의미의 '코퓨(Khophyu) 미디어'는 3월 말부터 날마다 하루에 한두 차례씩 민주항쟁과 관련된 주요 뉴스를 짧게 정리해 페이스북 페이지와 텔레그램에 올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 미디어는 복사만 해서 SMS(단문 메시지)로 소식을 보낼 수 있도록 분량이 짧은 것이 특징이다.

또 영문으로도 보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인터넷이 안 되는 지역에 있는 미얀마 시민들 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호응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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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럴(Federal) FM(90.2 MHz)이라는 라디오 방송도 최근 생겨 제1·2 도시인 양곤과 만달레이 시민들의 정보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매일 오후 2시부터 한 시간가량 민주 항쟁과 관련된 내용을 내보내고 있는데, 최근 한국 언론으로는 연합뉴스와 처음 인터뷰를 한 만달레이 민주화 운동가 타이자 산도 이 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양곤의 한 민주진영 활동가는 기자에게 "'씨또'는 국민들에게 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몰로토프'는 직접 활동하는 Z세대에게 혁명의 불씨를 살리고 실행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다"면서 "알게 모르게 시장을 중심으로 많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다만 군경의 검문 검색이 너무 심해 유인물을 받는 시민들도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기자에게 유인물을 전달해 준 상인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 기특하고 고맙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