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경기 부양책이 출발부터 벽에 부닥쳤다. 공화당 ‘초당파’ 의원들이 반대하면서다. 민주당에서 ‘반란표’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처와 이에 따른 경기 충격을 줄이기 위해 초대형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부양책 규모를 축소하라는 압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상·하원 장악을 계기로 초대형 부양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증시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밋 롬니 공화당 상원의원은 전날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직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방금 전 9000억달러 부양책을 통과시켰다”며 “나는 단기간에 새 부양책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사 머카우스키 공화당 상원의원도 “9000억달러 부양책의 잉크도 거의 안 말랐다”며 “대통령이 제안한 건 1조9000억달러나 되기 때문에 상당한 토론과 고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공화당 소속이지만 지난해 12월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초당적으로 9000억달러 부양책을 마련한 중도 성향 의원이다. 당시 공화당 지도부는 민주당이 요구한 2조2000억달러 부양책에 한참 못 미치는 5000억달러를 주장했다. 그러다 9000억달러 부양책이 나오면서 양당의 협상이 탄력을 받았다.

공화당 지도부는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 급증을 이유로 과도한 부양책에 반대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1조9000억달러 부양책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기댈 언덕’으로 꼽히는 공화당 중도파마저 비판적 목소리를 낸 것이다.

민주당 중도파 조 맨친 상원의원도 최근 ‘2000달러 현금 지원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1조9000억달러 부양책엔 작년말 9000억달러 부양책에 포함된 ‘1인당 최대 600달러 지원’에 더해 추가로 최대 1400달러를 더 지원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1조9000억달러 부양책을 원안대로 표결에 부칠 경우 맨친 상원의원이 이탈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부양책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CNBC는 “바이든 대통령이 부양책 규모 축소 압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소식통을 인용해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며칠 내 양당 초당파 상원의원들을 만날 것”이라며 “디스가 원안을 지지하겠지만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의견도 고려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부양책엔 최대 1400달러 추가 현금 지원외에 △주당 실업수당 증액(300달러→400달러)과 지급 시한 연장(3월→9월) △세입자 강제 퇴거 금지 기간 연장(1월→9월) △유급 휴가 및 아동 세제혜택 확대 △주·지방정부 지원(3500억달러) △학교 지원(1700억달러) △코로나19 검사(500억달러) 등이 들어 있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이르면 2월 첫째주 1조9000억달러 부양책을 통과시킬 전망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기자들에게 “상임위원회별로 다음주까지 법 조문 작업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원 통과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원은 과반수가 찬성하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하지만 상원은 전체 100석 중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50석이기 때문에 상황이 복잡하다.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토론)를 무력화하려면 6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예산 조정’ 절차를 활용하면 과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는 있다.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고 ‘반란표’를 모두 막는다고 가정하면 민주당은 공화당 의원들이 모두 반대해도 51표를 확보할 수 있다. 상원 금융위원장을 맡게 될 진보 성향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부양책 처리에 예산 조정 절차를 써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예산 조정 절차는 세입, 세출, 부채한도 등 항목별로 쓸 수 있는 횟수가 제한돼 있다. 이번에 쓰게 되면 나중에 다른 예산 법안을 통과시키기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막무가내로 부양책을 밀어붙이면 향후 공화당의 협치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민주당은 바이든 내각 후보자 조기 인준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등에서 공화당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대통령은 분명히 초당적 법안을 선호한다”면서도 “우리는 어떤 수단도 테이블에서 치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