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합병 위협·아랍권 국가 수교 및 미 새정부 출범 대응
민주적 선거 가능성에 여론 '부정적'…승복·이스라엘 반응도 변수

뿌리 깊은 정파 갈등을 겪어온 팔레스타인이 15년 만에 선거를 치르겠다는 공언하면서 그 배경과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현지 언론과 외신은 이번 조치가 이스라엘의 합병 위협,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의 관계 정상화 등 시급한 대외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아랍권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면서 멀어졌던 미국과의 관계도 조 바이든 신정부 출범과 함께 재설정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정파 갈등 치유를 기치로 내건 이번 선거의 순항을 점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요르단강 서안 일부를 관할하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주도하는 파타와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 사이에 이어져 온 뿌리 깊은 분열과 불신의 역사 때문이다.

뿌리 깊은 불신·분열…15년 만의 팔레스타인 선거 순항할까
◇ 15년 만의 선거…총선 5월 22일·대선 7월 31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 측은 지난 15일 총선과 대선에 관한 법령을 발표했다.

"오랜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는 선거의 취지도 제시했다.

법령에 따르면 자치의회 의원을 뽑는 총선은 오는 5월 22일에, 대선은 7월 31일, 팔레스타인민족회의(PNC) 선거는 8월 31일에 각각 치러진다.

법령에 명시된 '모든 도시'는 대이스라엘 온건 성향의 파타 정파가 지배하는 요르단강 서안, 대이스라엘 강경정책을 유지해온 하마스가 통치하는 예루살렘 동쪽의 가자지구, 그리고 이스라엘에 병합된 동예루살렘 모두를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건 하마스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2006년 총선 이후 15년 만이다.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도 아바스 수반 측의 선거 계획을 즉각 환영했다.

◇ 이스라엘-아랍권 관계 정상화 속 새판 짜기
뿌리 깊은 반목의 역사를 가진 파타와 하마스가 15년 만의 선거에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권 4개국의 관계 정상화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에 이어 모로코, 수단과도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스라엘과 맞서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고립은 더욱 깊어졌고, 팔레스타인과 미국의 관계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의 관계 정상화를 주도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해 미국의 정권 교체가 임박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이 새 미국 행정부와 관계 재설정을 위해 선거 카드를 내밀었다는 해석도 있다.

뿌리 깊은 불신·분열…15년 만의 팔레스타인 선거 순항할까
팔레스타인 분석가인 가산 카티브는 AFP 통신에 "미국의 새 정권 출범을 앞두고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중동) 관여에 관해 더 개방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유럽과 미국은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통성 부재에 불만을 제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정치 구조에 대한 (서방의) 비판을 누그러뜨릴 필요도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아바스 수반은 2005년 4년 임기로 자치정부 수반에 취임했지만, 하마스와의 정치적 대립으로 선거를 치르지 못한 채 임기를 계속해 정통성 문제가 제기됐다.

분석가 카티브는 또 팔레스타인이 제시한 선거 카드의 성패에는 이스라엘의 정치 현실 등 많은 요인이 결부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 민주적 선거 가능할까…여론은 부정적
파타와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합병 위협,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들의 수교 합의 등 대외 과제에 맞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단합을 모색하기 위해 선거 합의에 공을 들여왔다.

아랍권 국가들이 잇달아 이스라엘과 손을 잡으면서 정파 간 분열과 대립을 끝내야 할 필요성이 커진 팔레스타인은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지난해 9월 선거를 치르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뿌리 깊은 불신·분열…15년 만의 팔레스타인 선거 순항할까
그러나 민주적인 총선, 총선 결과에 따른 정부 구성 등 절차가 원만하게 진행될지에 대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전망은 다소 부정적이다.

지난달 정책조사연구센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 52%는 현 체제하에서 치러지는 선거가 공정하고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 2006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던 하마스가 이번에도 승리할 경우 아바스 수반이 이끄는 파타가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 비율은 76%에 달했다.

반대로 파타가 총선에서 승리하면 하마스가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 비율도 58%나 됐다.

서안의 정치 분석가인 하니 알-마스리는 로이터 통신에 "중요한 발걸음을 떼었지만 갈 길이 멀다"며 "엄청난 장애물이 남아 있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가자지구 주민은 "그들은 선거를 취소할 수천 가지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이스라엘의 저항, 권력분점 등 무엇이든 가능하다"며 "나는 희망을 품지 않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 이스라엘 동예루살렘 선거 불허할 듯…서방의 하마스 인정 여부도 변수
또 다른 장애물은 이스라엘이 과연 팔레스타인 선거를 용인할지 여부다.

아바스 수반이 발표한 법령에 따르면 선거는 서안과 가자지구는 물론 종교 분쟁지역인 동예루살렘도 포함된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을 통해 동예루살렘을 병합한 이후 이곳에서 팔레스타인 당국의 활동을 전면 금지했다.

뿌리 깊은 불신·분열…15년 만의 팔레스타인 선거 순항할까
따라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내 팔레스타인 선거를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하마스가 선거에서 승리해 정부 구성을 주도할 경우 국제사회가 이를 용인할지도 변수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여전히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