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적 가치인 집회의 자유와 생명권 사이 간극
라이프치히 집회서 2만명 방역수칙 무시…정치권, 일제히 비판
[특파원 시선] '시위권 존중' 독일…허용하면 방역무시 딜레마
독일 사회가 헌법적 가치인 시위권 보장과 전염병 방역 사이의 딜레마에서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독일 사회는 지난 7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 다시 충격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통제조치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2만 명의 집회 참석자 가운데 90% 이상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팬데믹 시대에 정해진 시위 규칙인 1.5m 거리두기도 무시됐다.

경찰과 취재진에게 폭죽 등의 물질이 날아드는 등 폭력적 양상도 나타났다.

경찰의 해산 명령은 공허했다.

문제는 독일에서 이런 식의 집회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베를린에서만 여러 차례 경험했다.

특히 지난 8월 말에는 브란덴부르크문 인근에 코로나19 통제에 반대하는 3만8천명의 시민이 모였다.

방역 수칙은 무시됐고 시위대와 경찰 간의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일부 시위대는 독일 민주주의의 상징인 연방하원 의사당 문앞까지 진출해 독일 사회를 당혹게 했다.

두 집회의 공통점은 행정당국이 집회를 금지했거나 장소 이동 조치를 내렸는데 법원이 뒤집었다는 점이다.

베를린 법원은 시위대가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당국의 주장에 대해 증거가 필요하다고 철회를 명령했다.

독일에선 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 격인 기본법 5조에 규정돼 있다.

독일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집회에 대한 제약은 상상할 수 없다.

반대자를 무자비하게 숙청했던 나치 시대에 대한 뼈저린 반성에서다.

시민사회에는 다시 반대 의견을 틀어막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저변에 탄탄히 깔려있다.

이런 이유로 독일 정치권에서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집회 자체에 대해 반대하지 않아 왔다.

미국에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베를린 등지에서 여러 차례 대규모로 열렸다.

코로나19 통제 반대 시위에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 방역 수장인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도 집회의 자유에 대해선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주최 측이 어떤 세력이건 말이다.

다만,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을 지킬 것을 요구해왔다.

물론 독일에서 집회의 자유를 누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불법으로 금지된 정당이 그 대상이다.

그런데 이 규정에 제약받는 정당은 사실상 없다.

신나치주의적 성향인 국가민주당(NPD)도 버젓이 합법적인 정당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NPD는 2013년 연방상원에 의해 정당해산 심판의 청구 대상이 됐으나, 2017년 연방헌법재판소는 NPD가 사회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라이프치히 시위에는 가족 단위, 학생들, 노년층 등 다양한 세대 및 형태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사실상 시위 주동자들은 극우주의자들이다.

반(反)백신 활동가 및 음모론자들도 극우주의자들과 결합했다.

이들은 방역 수칙을 무시해왔다.

집회에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물리적으로 거리 유지가 쉽지 않은 점도 있었다.

지금까지 시위의 폭력적인 양상도 극우단체 회원들이 유발해왔다.

독일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인명 보호를 위한 기본권 제한의 수위를 놓고 논쟁이 벌어져 왔다.

볼프강 쇼이블레 연방하원 의장은 지난 4월 말 인명 보호를 최우선시한다는 이유로 이외의 가치들을 부차적으로 취급하는 등 기본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통제 반대 집회에 대해선 기본적인 방역 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탓에 사회적으로 점점 배척을 받는 분위기다.

이번 라이프치히 집회에 대해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은 "이기주의 정점"이라며 비판했다.

역사학자 페터 막시빌은 8일 슈피겔온라인의 칼럼에서 라이프치히 집회를 허용한 법원의 결정 이유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서 법률가들이 "이번 주말의 혼란을 차분히 반추할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