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대선 후 '부정 선거' 주장 야권 저항시위 연일 계속돼
자동소총 든 루카셴코, 야권 '재선거 요구' 수용 불가 고수
러시아·서방도 신중한 태도…유혈 충돌-극적 타협 갈림길

옛 소련에서 독립한 동유럽 소국 벨라루스 정국의 위기 국면이 2주 이상 계속되고 있다.

26년 동안 벨라루스를 철권통치하고 있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65)의 대선 압승에 불복한 야권의 저항은 청년층과 여성 등 일반 시민이 대거 시위에 가세하고 국영기업 근로자들까지 파업을 통한 연대 시위에 나서면서 한층 격화했다.

그런데도 루카셴코 대통령은 대선 결과 무효화, 재선거 실시, 조기 사임 등의 야권 요구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정부와 야권 간에 일촉즉발의 긴장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로선 양측의 협상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9일 대선의 투표 부정과 개표 조작을 주장하는 야권의 저항 시위는 투표 당일부터 연일 계속되고 있다.

'안갯속' 벨라루스 정국 위기…루카셴코-야권, 2주 넘게 대치
민스크트랙터공장(MTZ), 민스크바퀴견인차량공장(MZKT), 정유공장, 비료공장 등 국영기업 근로자들의 파업과 연대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주말인 지난 16일과 20일 시위에는 수도 민스크에서만 20만명 이상이 참가했다고 현지 언론은 추산했다.

25일에도 민스크 시내에서 수천 명이 참가한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아직 야권 시위를 조직적으로 이끄는 지도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근 대선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에 도전했던 가정주부 출신의 여성 야권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37)는 저항의 상징적 인물로 부상했지만 시위를 이끄는 지도자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신변 안전 위협 때문에 대선 이후 이웃 국가 리투아니아로 도피해 있다.

티하놉스카야의 주창으로 사회 각계 대표들이 참여해 결성한 야권 조직 '조정위원회'도 루카셴코 정권과의 협상과 재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위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지는 않고 있다.

오랫동안 거리 시위를 이끌었던 다른 야권 지도자들은 대부분 대선 전 체포돼 수감돼 있다.

야권이 결집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루카셴코 대통령은 자진 사임은 물론 대선 결과 무효화나 재선거 요구를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그는 자동소총을 손에 든 모습을 언론에 흘리며 시위대 강경 진압 의지를 과시하는가 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인 폴란드와 접경한 서부 지역 군부대를 방문해 서방의 내정 간섭 시도를 비난하는 등 연일 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권력 기관은 여전히 루카셴코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거두지 않고 있다.

벨라루스군 총참모장(참모총장) 알렉산드르 볼포비치는 25일 "현재의 복잡한 정세에서 군은 국가와 사회, 평화롭게 살고 일하기를 원하는 시민을 지키기 위한 군사안보를 보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빅토르 흐레닌 국방장관은 앞서 시위대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비 등을 파손하면 경찰이 아니라 군대와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시위가 격화할 경우 군이 나설 것임을 경고했다.

경찰과 내무군도 시위 진압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안갯속' 벨라루스 정국 위기…루카셴코-야권, 2주 넘게 대치
벨라루스 사태를 두고 대립하는 러시아와 서방도 아직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벨라루스의 '형제국' 지위를 자임하는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의 벨라루스 사태 개입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하면서도, 역시 '내정개입 불가 원칙'을 내세워 루카셴코에 대한 직접적 지지 표명은 자제하고 있다.

벨라루스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과 함께 부정선거와 시위대 탄압에 책임이 있는 벨라루스 인사들에 대한 제재 방침을 밝힌 유럽연합(EU)과 미국도 루카셴코 퇴진과 재선거 실시를 강력히 요구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진 않고 있다.

현재로선 벨라루스 정국 향방을 정확히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권과 야권 간 협상이 성사되지 못하고 양측의 대치가 더욱 격화하면서 유혈 충돌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

동시에 아직은 유혈 충돌 같은 극한 상황까지 가진 않은 만큼 양측이 극적인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러시아의 독립국가연합(CIS·옛 소련권 국가모임) 연구소 부소장 블라디미르 좌리힌은 "루카셴코가 의회와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약속을 이행하고, 대통령의 권한 일부를 정부에 이전한다면 국민의 불만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이 제안해온 권력분점 개헌과 그 이후 대선 및 총선 실시 방안을 염두에 둔 분석이다.

이와 함께 루카셴코가 거세지는 야권의 압박에 밀려 결국 퇴진하고 대선에서 2위를 차지한 야권 후보 티하놉스카야가 임시 대통령을 맡아 재선거를 실시하는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 정치 전문가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대선 뒤 루카셴코는 시위대와 일정 정도 타협하는 방안과 모든 반대자를 철저하게 탄압하는 방안 등 두 가지 선택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본인에게 가장 위험한 후자를 택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루카셴코는 화약통 위에 앉아 있는 셈이라면서 야권이 승리하면 그는 신체 자유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안갯속' 벨라루스 정국 위기…루카셴코-야권, 2주 넘게 대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