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빅4’ 최고경영자(CEO)가 29일(현지시간) 사상 처음으로 의회 청문회에 동시 출석해 독점 의혹에 항변했다. 청문회에 ‘공격수’로 나선 의원들은 이들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갑질’을 하고 있다고 추궁했지만 한국 국회의 기업 청문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통, 막말 등 ‘CEO 창피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CEO들도 몸을 낮추기는 했지만 “우리는 독점이 아니다”며 할 말은 하는 분위기였다.

몸 낮췄지만 할 말은 한 CEO들

미 하원 법사위원회의 ‘반독점 청문회’는 이날 낮 12시(한국시간 30일 오후 1시)부터 다섯 시간 넘게 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평소처럼 CEO들이 워싱턴DC에 있는 의회에 출석하는 대신 의사당과 실리콘밸리를 화상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민주당 소속인 데이비드 시실린 반독점소위원장은 청문회 시작부터 빅4 기업을 “온라인 경제의 황제들”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하고 억압적인 계약을 강요하며 자신들에게 의존하는 개인·기업체로부터 소중한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다”고 비판했다.

CEO들은 일제히 독점 의혹을 부인했다. 팀 쿡 애플 CEO는 “우리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 어떤 시장이나 어떤 제품 범주에서도 지배적인 점유율을 갖고 있지 않다”며 스마트폰 시장에선 삼성전자, LG전자, 화웨이 등과 경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도 “글로벌 소매시장은 매우 경쟁적”이라며 월마트, 코스트코, 타깃 등을 경쟁자로 꼽았다. 아마존이 온라인 소매시장에선 강자지만, 오프라인 유통시장까지 포함하면 ‘하나의 사업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소셜미디어시장에서 극심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며 애플의 아이메시지, 틱톡, 유튜브 등을 경쟁자로 들었고 광고시장에선 아마존, 구글과 경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치열한 경쟁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계속 혁신하지 않으면 누군가 오늘 여기 있는 모든 기업을 대체한다는 걸 역사는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도 “트위터,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컴캐스트 등으로부터 강력한 온라인 경쟁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 각 주 검찰은 이들 IT 기업을 대상으로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조사 결과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기업 분할 명령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기업 창피주기’는 없었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거의 한목소리로 빅4의 독점을 비판했지만 막말과 호통보다는 ‘증언’과 ‘자료’를 제시하며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루시 맥배스 공화당 의원은 아마존에서 물건을 파는 소상공인의 피해 목소리를 현장에서 공개하며 “아마존은 자신들의 성공이 아마존에서 거래하는 소상공인들 성공에 달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을 괴롭히고 공포와 패닉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베이조스는 “놀랐다”며 고개를 숙이면서도 “시스템적으로 그런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하원이 이번 청문회를 위해 130만 건 이상의 빅4 문서를 분석하고 수백 시간의 인터뷰를 했다고 전했다. 의원들도 그만큼 철저히 자료를 수집한 것이다. 이날 청문회에서 아마존은 온라인시장 매출의 75%를 차지하는 독점 기업이며, 아마존에서 물건을 파는 기업들의 데이터를 빼돌려 이들 제품과 비슷한 자사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애플은 앱스토어 내에서 앱 개발자들로부터 매출의 30%를 수수료로 받아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쿡 CEO는 수수료 인상을 시도한 적이 없다고 밝혔으나, 의원들은 애플이 앱 개발자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려고 했다는 문서를 발견했다고 반박했다.

美 IT 빅4 '반독점 청문회'…기업인 망신주는 '정치쇼'는 없었다
공화당 일부 의원은 빅4의 정치적 편향성을 겨냥했다. 짐 조던 공화당 의원은 “빅 테크(기업)들은 보수주의자를 끌어내리기 위해 나섰다”고 주장했다. 구글에는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돕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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