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이 강화될 전망이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비슷한 ‘바이 아메리칸(미국산 제품 구매)’ 공약을 들고나오면서다. 워싱턴포스트(WP)는 “거대 양당이 모두 세계화와 자유무역에서 멀어져 미국 노동자와 미국 산업 보호 쪽으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보호주의’로 선회한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왼쪽)이 9일(현지시간)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튼에서 어린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왼쪽)이 9일(현지시간)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튼에서 어린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이든이 이날 내놓은 경제 구상은 연방정부가 4년간 7000억달러를 추가 투입해 미국산 제품 구매와 기술 개발 투자를 늘려 5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4000억달러를 미국 제품 구매에, 3000억달러를 기술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미국 산업과 일자리 보호를 최우선에 두겠다는 것이다. 3000억달러 중 절반가량은 친환경 에너지 기술에 집중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은 이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정책 일부를 철회하고 부유층의 세금 부담을 늘릴 방침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닮은꼴로 기존 ‘바이든 노선’과는 차이가 있다는 게 미 언론들의 평가다. 바이든은 과거 상원의원 시절 멕시코, 캐나다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지지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선 아시아 국가들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에 찬성했다. 보호무역이 아니라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득표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

바이든의 노선 변경은 보호주의 정책이 득표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결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NAFTA와 TPP가 미국 산업과 일자리를 파괴한다고 비판하면서 세계화와 자유무역으로 일자리를 잃은 백인 노동자 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덕분에 핵심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에서 승리했고 집권에 성공했다. 이에 비해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TPP 등 자유무역에 찬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후 NAFTA를 폐기하고 미국에 더 유리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체결했고, TPP에서 탈퇴했다. 이뿐만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개정하고, 중국, 유럽, 일본과도 무역전쟁을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켰지만 백인 노동자층은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으로 남았다. 이번 대선에서 러스트벨트 등 경합주를 둘러싸고 치열한 승부를 벌여야 하는 바이든이 보호주의를 꺼내든 배경이다.

트럼프 측에선 “당했다”

WP는 이날 바이든의 경제 공약 발표에 트럼프 캠프가 ‘선수를 뺏겼다’며 당황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트럼프 캠프도 바이든과 비슷한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내부 이견으로 발표가 미뤄지는 사이 바이든이 먼저 치고 나왔다는 것이다.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책사였던 스티븐 배넌은 이날 자신의 라디오방송에서 바이든의 구상이 펜실베이니아 등 경합주에서 바이든의 득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트럼프 팀이 무방비로 당했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이번 공약은 트럼프에 비해 약점으로 간주된 경제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바이든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크게 앞서고, 코로나19와 인종차별 대응을 비롯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트럼프보다 경쟁력 있는 후보로 평가받고 있지만 유독 경제 분야에선 밀렸다. 하지만 바이든이 트럼프와 비슷한 정책을 들고나오면서 트럼프의 경제 분야 경쟁 우위가 희석될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