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또 EU 겨냥…희생양 삼았다" 해석도
유럽 증시 급락…코로나19 확산 차단 대응 부심 속 경제 악영향 우려
EU, 트럼프 입국금지 조치에 부글부글…대서양 동맹 또 '충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유럽 국가에 대해 한시적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미국과 유럽 간 대서양 동맹이 또 한 번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 관리들은 1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놀라움과 분노를 드러내면서 이번 조치가 EU 각 회원국, 특히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유럽 국가의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영국을 제외한 26개 유럽 국가에 머문 외국인의 미국 입국을 30일간 금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EU에서는 바이러스가 이미 전 세계로 확산한 상황에서 여행 제한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미국이 EU 각국과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점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장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EU 회원국 정상의 회의체인 EU 정상회의 샤를 미셸 상임의장은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일방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두 사람은 "EU는 여행 금지를 부과한 미국의 결정이 일방적으로, 협의 없이 이뤄졌다는 점에 반대한다"면서 "코로나19는 세계적인 위기로, 어떠한 대륙에 국한되지 않으며 일방적인 조치보다는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EU의 코로나19 대응을 겨냥한 발언을 한 데 대해서도 "EU는 바이러스 확산을 제한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EU는 미국처럼 과감한 조처를 하거나 중국 등으로부터 여행을 제한하는 데 실패했다며 미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의 상당수 집단발병지(클러스터)가 유럽을 다녀온 여행객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EU의 한 관리는 AFP 통신에 "만약 그가 EU가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을 원한다면, 좋다"면서 "그것은 변덕스럽고, 일방적이며 불필요한 많은 문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U, 트럼프 입국금지 조치에 부글부글…대서양 동맹 또 '충돌'
특히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가 미국 행정부의 대응에 이목을 쏠리게 하는 대신 외부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정치적인 결정이며, EU가 또 한 번 '희생양'이 됐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제라르 아로 전 미국 주재 프랑스 대사는 트위터에 "트럼프는 그의 행정부는 이 위기에서 어떠한 책임도 없다고 해줄 이야기가 필요했다"면서 "외국인은 언제나 좋은 희생양"이라고 썼다.

지난 1월 EU를 탈퇴한 영국은 입국 금지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해석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AP 통신은 유례없는 이번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주요 교역국이자 세계 최대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인 EU를 겨냥해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최근 유럽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며 EU를 비롯한 각국 정부가 대책 마련과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에 당장 이날 유럽 증시는 급락했다.

또 이미 고전하고 있는 유럽의 항공사, 여행사 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특히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무역을 비롯해 파리기후변화협정, 이란 핵 합의 등 각종 현안을 두고 충돌하며 균열을 드러낸 대서양 동맹에 또한번의 타격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워 EU를 포함해 외국산 철강 제품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각각 25%와 10% 관세를 부과했고 계속해서 추가적인 조치를 위협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EU 집행위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에 대한 대응을 묻자 EU는 "성급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서 "좋은 정책 결정에는 숙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고 AP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