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듀스터버그 허드슨연구소 수석연구원

하드웨어 기반 통신 탈피
범용 서버서 여러 장비 기능을
소프트웨어 형태로 구현
'외부앱 차단' 화웨이와 차별화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최근 자국 이동통신망 구축에 화웨이 등 중국산 통신장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같은 결정은 나머지 유럽 국가들도 이를 따라갈 수 있는 길을 터줬다. 그동안 안보를 내세워 화웨이, ZTE 등 중국 업체들이 동맹국 통신망 구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압박해온 미국 정부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또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에 대한 강력한 대안이 없다는 근본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유럽과 다른 나라들에서 판세를 역전시키려면 중국산 제품보다 더 유연하고, 더 싸고, 더 안전하게 개발된 새로운 기술을 제시해야 한다.

화웨이는 미 의회로부터 의심스러운 수단으로 기술을 사용해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화웨이는 2003년에 자사 라우터(네트워크 연결 장치) 소프트웨어를 위해 미국 시스코의 코드를 복사했다고 시인했다. 중국은 화웨이에 750억달러나 되는 보조금을 쏟아붓기도 했다. 화웨이는 5세대(5G) 이동통신 시스템과 값싼 유지 보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것은 많은 나라에 매력적인 제안이다. 그러나 화웨이 시스템은 독점적이며 서비스를 유지하거나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중국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요구한다. 화웨이 시스템을 설치하는 나라들은 전략적으로 중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정부는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쉽게 빼갈 수 있고, 중국 당국과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중국산 네트워크의 보안이 매우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중국산 제품을 피해야 하는 경제적 이유에도 주목해야 한다. 통신망 구축과 운영은 수많은 앱(응용프로그램)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네트워크 부문 선두업체는 자율주행자동차와 제트엔진 등의 데이터를 확보해 새로운 서비스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또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면 인공지능(AI)에 활용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에도 접근할 수 있다. 5G 네트워크 구축에 있어 중국에 굴복해서는 안 되는 충분한 전략적, 경제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화웨이와 경쟁하는 여러 업체가 있다. 삼성전자는 특히 공격적이고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노키아, 에릭슨과 같은 유럽 통신장비업체는 화웨이가 누리는 막대한 자금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고, 그들의 제품은 더 비싼 경향이 있다. 미국 시스코, 인텔, 퀄컴 등과 일본 NEC도 네트워크 장비를 개발하지만 화웨이가 우위를 점하면서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은 제3국에서 기술 진흥 노력을 통해 화웨이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업체는 5G 시스템 구축과 자금 조달 등에 있어 국가적 지원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일본은 미국 금융기관들과 협력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미국의 새로운 개발금융공사와 재구성된 수출입은행 등은 이제 시작 단계일 뿐이고, 관리자들은 통신 네트워크에 필요한 복잡한 시스템 개발 경험이 거의 없다.

미국 통신업계는 화웨이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하드웨어 기반 통신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가장 유망한 것은 ‘네트워크 가상화’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기존의 유선 연결, 스위치 및 기타 장비 등을 가상 네트워크로 구성하는 것이다. 각각의 통신 서비스를 위해 개별 하드웨어를 설치하는 대신 범용 서버에서 여러 통신장비 기능을 소프트웨어 형태로 구현한다. 이는 화웨이가 네트워크 구성, 소프트웨어 등에 대한 제어권을 유지하기 위해 하드웨어를 독점하는 문제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네트워크 가상화의 선두주자는 미국, 일본, 한국, 유럽 등이다. 또 외부 앱을 차단하는 화웨이 시스템과 달리 네트워크 가상화는 폐쇄적이지 않다. 일본 전자상거래 업체인 라쿠텐은 오는 4월 가상 네트워크를 활용한 통신 서비스 상용화를 계획하고 있다. 시스템 일부는 퀄컴, 시스코, 휴렛팩커드 등 미국 회사들이 공급한다. AT&T, 노키아, 버라이즌 등 글로벌 통신사도 미국과 유럽에서 가상 네트워크를 테스트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상원의원 6명으로 구성된 초당파 그룹은 화웨이와 ZTE에 맞설 서방 국가 기업을 지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통신장비 개발과 연구, 표준 제정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화웨이의 대안으로 네트워크 가상화에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역시 5G 부문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지만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 가상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민간 자본이 필수적이다. 미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기술 혁명을 주도해 왔다. 긴 승리의 연장선상에서 가상 네트워크는 미국이 중국과의 통신망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원제=There Is a Better Alternative to Huawei
정리=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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