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가 향년 101세로 29일 별세했다. 사진은 1993년 5월 25일 방한해 청와대를 예방한 나카소네 전 총리와 악수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일본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가 향년 101세로 29일 별세했다. 사진은 1993년 5월 25일 방한해 청와대를 예방한 나카소네 전 총리와 악수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일본 중의원 의원으로 56년간을 활동하면서 근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으로 자리매김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29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넘어 도쿄 시내의 한 병원에서 나카소네 전 총리가 타계했다. 향년 101세.

1918년 5월 27일 군마현에서 태어난 고인은 도쿄대를 졸업한 후 옛 내무성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 종전 직후인 1947년 28세 때 중의원에 처음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이때 이후부터 20회 연속으로 중의원(하원) 의원에 당선되는 전무후무의 기록을 남겼다.

또한 1959년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내각에서 과학기술청 장관으로 입각한 후 방위청 장관, 통산상, 자민당 간사장과 총무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2년 11월 제71대 총리를 맡아 73대까지 총 1806일을 재임하며 아베(安倍), 사토(佐藤), 요시다(吉田), 고이즈미(小泉) 내각에 이어 전후 5번째 장기 정권(4년 11개월)을 이끌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1960년대 초반 한일 양국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1983년에는 현직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방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경제협력자금 지원을 결정하는 등 양국의 우호증진에도 크게 기여했다.

또한 재임 중 누적된 적자로 국가재정에 압박을 주던 전매공사(현재의 일본담배산업/JT)와 일본전신전화공사(현재의 NTT), 일본국유철도(현재의 JR그룹) 민영화를 실시, 일본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198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을 이끈 A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일본 총리로는 최초로 공식 참배해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당시 그는 야스쿠니를 미국 알링턴 등 전몰장병 묘지와 동급으로 놓고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거나 "전후는 총결산됐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러한 반발 이후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했지만, 50여년간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일관되게 전후 정치 총결산을 내걸고 평화헌법 개정 등 일본의 우경화를 앞장서 주창해왔다.

특히 1994년 일본이 전후 50주년을 맞아 전쟁범죄에 관한 사죄 결의를 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을 피력하는 등 한평생을 우익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걸어 일본 우파세력의 우두머리로 자리매김했다.

총리에서 물러난 후인 1989년 5월엔 '리쿠르트 스캔들'에 연루돼 중의원 예산위에 증인으로 소환될 위기에 처하자 자민당을 탈당했다가 2년 만인 1991년 복당하기도 했다.

하시모토 류타로(1937∼2006) 총리 시절엔 지역구를 내놓으면서 종신 비례대표 1번을 보장받았지만, 2003년 11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중의원 비례대표 73세 정년제'를 앞세워 사실상의 퇴진을 요구하자 85세 때 56년간의 의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고인은 정계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새로운 헌법의 제정을 목표로 초당파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단체의 회장을 맡는 등 일본 내정과 외교에 관한 적극적인 발언을 해왔다.

대표적인 예로 2014년에 집단 자위권은 현 정세상 필요없다고 발언하며 아베 정권을 강력히 비판했다.

방정훈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