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군사·외교·경제 압박하지만 대만인 반발심 커져'역풍'
"홍콩 다음은 우리 될 수도"…위기감 속 반중 정서 강해져
[대만대선 D-100]① 中 압박 거셀수록 미소 짓는 차이잉원

"홍콩의 오늘은 대만의 내일이다.

대만 민주주의를 지키자."
지난달 29일, 타이베이(臺北) 도심의 입법원(국회) 앞 도로.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주최 측 추산 10만명이 넘는 시민이 모여 '홍콩 지지, 전체주의 반대 행진' 집회를 열었다.

유모차를 미는 젊은 부부, 청년, 퇴직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시민들이 'NO CHINA', '대만 보위, 민주 수호, 홍콩 지지, 전체주의 반대' 같은 내용이 적힌 손팻말과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반중국 구호를 외쳤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나온 옌(閻·45)씨는 "이미 큰 위협이 다가왔다"며 "중국은 무력 통일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경제적 타격을 주면서 우리의 법치와 민주주의를 침식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시위 모습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 아래 중국의 일부분이 된 홍콩이 겪는 정치적 위기가 미래에 자신들에게도 닥칠 수 있다고 느끼는 대만인들의 위기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대만대선 D-100]① 中 압박 거셀수록 미소 짓는 차이잉원

내년 1월 11일 치러질 대만 총통 선거가 오는 3일로 꼭 10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중국 이슈'가 대만 대선 정국을 집어삼킨 형국이다.

극적인 변화는 작년 11월 지방 선거에서 야당인 중국국민당에 참패하면서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았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화려한 부활이다.

대만 최고 부호인 궈타이밍(郭台銘)의 불출마 선언으로 차이 총통과 국민당 후보인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시 시장이 양자 대결을 벌이는 가운데 차이 총통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이상 격차로 한 시장을 여유 있게 앞서고 있다.

1일 대만 빈과일보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차이 총통은 41.2%의 지지율을 얻어 30.8%에 그친 한 시장을 10.4%포인트 차로 앞섰다.

[대만대선 D-100]① 中 압박 거셀수록 미소 짓는 차이잉원

차이 총통은 올해 상반기까지는 작년 지방선거에서 국민당 압승이라는 파란을 연출한 한 시장에게 열세였는데 지난 8월부터 본격적으로 한 시장을 앞질렀다.

대만에서는 차이 총통 부활의 일등 공신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라는 말이 회자한다.

중국의 대만을 향한 '최대 압박'이 대만 유권자들의 반감을 초래해 차이 총통 지지율 급상승으로 이어진 것을 빗댄 말이다.

대만 독립 추구 성향의 차이 총통이 2016년 집권한 후 중국은 대만에 외교·군사적 압력을 가하는 한편 여러 경제적 '불이익'을 줬다.

올해 들어서는 이런 압박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강화됐다.

시 주석은 지난 1월 2일 공개 연설에서 대만이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 방식의 통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무력 통일 방안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초강경 발언을 해 대만을 바짝 긴장시켰다.

[대만대선 D-100]① 中 압박 거셀수록 미소 짓는 차이잉원

중국은 이후 실제로 대만을 향한 군사적 압박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지난 3월 중국 전투기들이 2011년 이후 처음으로 대만해협의 중간선을 넘은 것이 단적인 사례다.

중국은 외교적으로도 대만을 고사시키려 한다.

차이 총통 취임 이후 엘살바도르, 솔로몬제도 등 7개국이 대만과 단교하면서 현재 대만과 외교 관계를 맺은 나라는 15개 나라로 줄었다.

하지만 대만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경제적 압박이다.

지난 8월부터 중국은 본토 주민의 대만 자유여행을 금지했다.

작년 대만을 방문한 중국인 개인 관광객은 약 107만명이다.

대만 여행업계는 중국의 '여행 제재'가 계속될 경우 한화로 1조원이 넘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다.

[대만대선 D-100]① 中 압박 거셀수록 미소 짓는 차이잉원

많은 대만인이 이미 삶이 팍팍해져 가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들 사이에서는 양안 관계(중국과 대만 관계) 악화의 책임이 탈중국 정책을 견지한 차이 총통에 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택시 기사 예(葉)씨는 허공에 삿대질하면서 "중국 관광객이 아예 없어져 수입이 20∼30% 줄었다.

택시 기사에서 야시장 노점상들까지 너무나 삶이 힘들어졌다.

초록(민진당)이든 파랑(국민당)이든 백성을 편안하게 먹고살게 해줘야 하지 않나"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런 중국의 압박 속에서 차이 총통은 대만 주권과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앞세우면서 외부 압력에 단호한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했다.

그는 지난 5월 중국의 침공을 가정한 대규모 군사훈련인 한광(漢光) 35호 훈련을 참관하면서 군복 차림에 군화까지 신고 대중국 '항전'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차이 총통은 계속해서 이번 선거가 자신과 중국과의 대결이라는 메시지를 띄우고 있다.

그는 지난달 28일 민진당 창당 33주년 행사에 참석해 "2020년의 대결에서 우리의 적수는 국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 건너에 있다"며 "베이징의 압력에 굴복한다면 중화민국은 사라지게 될 것"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에게 우호적인 최근의 여론 추이를 보면 단기적으로 중국의 대만 압박 목적이 달성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만대 정치학과 학생 리(李·21)씨는 "중국은 자기들에게 기울지 않는 지도자가 대선에서 당선되면 대만인들이 경제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좋은 날을 보내지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중국에 치우친 후보가 당선되면 대만 민주주의에 위기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대선 D-100]① 中 압박 거셀수록 미소 짓는 차이잉원

대만에서 반중국·탈중국 정서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 본토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전통적으로 중국 본토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국민당은 효과적인 선거 전략을 짜기가 곤란한 상황이다.

한 시장은 차이 총통 치하에서 대만 민중이 편안하게 살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그러나 한 시장은 '대만 국민들이 돈을 잘 벌게 해 주겠다'는 경제 구호를 내걸고 중앙 정치판에 혜성같이 등장했지만 대선 정국이 외풍에 휩싸이면서 선거 메시지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아울러 지난 6월부터 계속된 홍콩의 민주화 시위도 대만 대선 정국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이 대만에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를 바탕으로 통일을 하자고 강하게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어서 많은 대만인은 자연스럽게 홍콩의 위기가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다.

차이 총통은 공개적으로 홍콩 시위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한 시장과 차별점을 부각하고 나섰다.

홍콩 시위가 본격화한 6월 이후부터 차이 총통 지지율이 급등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대만대선 D-100]① 中 압박 거셀수록 미소 짓는 차이잉원

판스핑(范世平) 대만사범대 정치학연구소 교수는 "시진핑이 대만에도 반드시 일국양제를 적용하겠다고 하자 대만 민중은 미래에 대만도 홍콩처럼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게 됐다"며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 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크게 형성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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