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 소속 혁명수비대가 영국 국적의 유조선을 나포하려고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이 지난 4일 유럽연합(EU)의 대(對)시리아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이란 유조선을 억류한 데 따른 보복성 조치로 풀이된다. 핵협정 탈퇴를 놓고 이란과 서방세계 국가 간 긴장이 더 고조되는 모양새다.

10일(현지시간) CNN 방송은 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으로 추정되는 다섯 척의 무장 선박이 페르시아만 인근 해역을 지나고 있던 영국 유조선 ‘브리티시 헤리티지’호를 나포하려다 실패한 사실을 보도했다.

소식통은 해당 선박들이 유조선에 접근해 인근 이란 영해에 정박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 선박들은 유조선을 호위하기 위해 뒤따라 오고 있던 영국 해군 소속 소형 구축함인 ‘몬트로즈’함이 발포하겠다는 구두 경고를 한 뒤에야 물러났다. 당시 인근 상공을 비행 중이던 미군 소속 유인 정찰기가 이 상황을 촬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정부도 이날 성명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했다.

이란에서는 4일 영국령 지브롤터에서 자국 유조선이 억류된 데 대한 보복으로 영국 유조선을 억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날 “영국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보복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모흐센 라자에이 이란 국정조정위원회 사무총장은 트위터를 통해 “영국 유조선을 억류하는 것은 이란 당국의 의무”라고 했다. 그러나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날 “지난 24시간 동안 외국 선박과의 조우는 없었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그들(영국)이 하는 말은 긴장을 조성하려고 스스로 꾸며낸 것이며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영국 더타임스 등은 영국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오만해로 진출하는 자국 유조선 호위를 위해 몬트로즈함을 투입한다고 보도했다. 몬트로즈함에는 소형 선박 퇴치 등에 사용되는 30㎜ 함포가 장착돼 있다.

CNN은 이번 사건이 고조되고 있는 이란과 서방세계 간 긴장의 불씨에 기름을 붓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란은 미국이 핵협정 탈퇴를 선언한 지 1년이 된 지난 5월 8일 핵협정 이행 범위를 축소할 계획을 처음 밝혔다. 7일에는 핵협정에서 제한한 농도인 3.67%가 넘는 수준으로 우라늄 농축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핵무기 원료가 되는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사실상 이란의 핵협정 탈퇴를 의미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제재가 곧 상당히 늘어날 것”이라며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은 현재 이란을 상대로 한 금융 거래와 원유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란은 핵협정에 참여했던 유럽 국가들에 중재를 촉구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7일 “유럽은 60일 안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 및 이란과의 금융 거래를 재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로하니 대통령은 오는 15일까지 핵협정을 재개할 조건을 협의하기로 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