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중국 송환법)을 둘러싼 대규모 시위로 ‘아시아 금융 허브’로 자리잡은 홍콩의 입지가 뿌리부터 흔들린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민주적인 사법시스템 안에서 금융 허브 위상을 누리던 홍콩이 점점 ‘중국화’되면서 비즈니스 여건이 악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홍콩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싱가포르가 홍콩을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17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홍콩에서 정치적 불안이 커지자 다수 기업이 투자를 철회하거나 연기하는 등 홍콩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홍콩에서 930억달러(약 110조3000억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파인브리지인베스트먼트를 포함한 상당수 기업이 홍콩 시위를 이유로 최근 현지에서 계획했던 행사를 줄줄이 연기했다. 부동산개발업체 골딘파이낸셜홀딩스는 사회 동요와 경제 불안정을 이유로 14억달러 규모의 부지 입찰 계획을 접었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사무소를 싱가포르 등지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주의 후퇴하는 홍콩…'亞 금융허브' 싱가포르에 뺏길 판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자금이 이탈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홍콩 재벌들은 홍콩의 정치적 리스크가 높아지자 재산을 해외로 옮기기 시작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홍콩의 한 자산가는 홍콩 씨티은행 계좌에서 싱가포르 씨티은행 계좌로 1억달러 이상을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대부분 자산가들이 싱가포르를 도피처로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요 다국적 기업이 홍콩에 아시아지역 본부를 두고 있는 것은 홍콩이 ‘법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중국과 별개로 독립적인 사법시스템과 자본시장 친화적인 금융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거대 시장인 중국과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하지만 중국의 장악력이 확대되고 정치적 불안이 커지면 홍콩의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은 공산당과 정부가 사사건건 개입하는 중국 본토식으로 경영 환경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서방은 ‘중국의 홍콩화’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홍콩이 중국처럼 바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홍콩의 자치권이 훼손되면 기업과 자본이 대거 이탈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주요 도시의 금융 경쟁력을 평가하는 영국 지옌그룹의 평가에서 홍콩의 세계 금융 허브 순위는 3위로 4위인 싱가포르를 앞선다. 하지만 홍콩에 대한 중국 공산당 및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커지면 홍콩의 순위가 크게 하락할 것으로 보는 게 글로벌 금융계의 시각이다. 지옌은 금융 허브 순위를 다섯 가지로 평가하는데, 첫 번째가 비즈니스 환경이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적 안정성이기 때문이다. 홍콩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한 이후 자치권과 정치적 자유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