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 "경제성장률 1.8%p 삭감"…경기침체 가능성도
IT중소기업·농민들 신음…투자자들은 '트럼프 풋옵션' 기대
"트럼프 관세폭탄 떨어지면 美경제 상승세에 '찬물'"
미국이 예고대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면 호조를 보이는 미국의 경기가 둔화를 넘어 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8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관세 인상이 현재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경제에 중대 변수가 될 것으로 진단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카크런은 관세인상을 지칭하며 "'게임체인저'(판도를 뒤집을 사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0일부터 2천억달러 규모 중국산 수입품의 관세가 10%에서 25%로 인상되면 작년 2.9%였던 미국의 건실한 경제성장률이 1년 뒤 1.8%포인트 깎일 수 있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0일부로 2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고율 관세를 물리지 않고 있는 나머지 중국수입품 전체에 해당하는 3천25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도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2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율 인상은 아직 연방 관보에 공식 게재되지는 않은 상태다.

다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공공검사(public inspection) 명목으로 연방 관보 웹페이지에 관세율 인상계획을 게재해 9일 고시를 예고한 상태다.

한쪽에서는 추가 관세의 직접 타격보다는 심리적 악영향을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에스워 프래서드 미국 코넬대 교수는 "추가 관세가 부과되면 경제성장과 물가상승에 미치는 전반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지만 미국에서 광범위한 상품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관세폭탄 떨어지면 美경제 상승세에 '찬물'"
미국이 관세 인상을 예고한 2천억 달러 규모 제품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부터 대나무 돗자리, 마이크, 담배종이까지 수천개다.

나머지 3천25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는 소비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 그간 타깃에서 제외된 주요 소비재들이 모두 포함된다.

지난해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한 규모는 5천395억 달러였기 때문에 추가 관세 부과가 실행되면 미국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전체 상품에 대해 25%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프래서드 교수는 "무역전쟁이 고조돼 기업 심리가 악화하면서 투자와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우려"라고 설명했다.

중국수입품에 의존하는 미국 기업들의 불만은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새로 성장하는 시장에 발을 뻗는 정보기술(IT) 업체들의 고충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2천억 달러 규모의 관세 목록에는 차세대 이동통신망인 5G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장비, 반도체, 데이터센터 부품 등이 포함돼 있다.

IT업체 소스1 솔루션을 경영하는 로버트 헤설은 "매달 관세를 얻어맞고 있다"며 "관세는 장비를 수입하거나 우리같은 주소기업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IT 전시회 CES를 매년 주최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소규모 기술기업들이 추가 관세로 인해 존망의 기로에 섰다고 진단했다.

브로윈 플로러스 CTA 대변인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며 "기업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플로러스 대변인은 기업들 일부가 정리해고에 나서거나 신제품 출시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애플과 같은 대기업도 관세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컨설팅업체 '크리에이티브 스트래티지스'의 팀 바자린 회장은 추가 관세가 부과되면 애플에는 이익이 삭감되든지, 제품 가격을 올려 소비자들 잃는 위험을 감수하든지 두 갈래 길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자린은 "다른 길은 없다"며 "기업들이 협상카드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상황을 요약했다.

플로러스 대변인은 일부 기업들이 이미 중국을 떠나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지로 제조업 사업장을 옮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수십년간 운영해온 사업장을 떠나 새로 인력을 고용하고 훈련시키도록 한다는 점에서 추가 관세는 기업의 의사결정을 마비시키고 부가가치 창출을 고갈시키는 일종의 불확실성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관세폭탄 떨어지면 美경제 상승세에 '찬물'"
중국이 미국의 관세에 즉각 보복하겠다고 경고한 점도 미국 경제에 악재다.

작년에 중국은 1천1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그 표적은 '팜 벨트'(Farm Belt)로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표밭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었다.

미국산 대두(메주콩)의 작년 대중 수출은 고율 관세로 인해 무려 74%나 감소했다.

무역전쟁이 격화하면 미국산 농작물은 폭락세를 거듭하며 농민들의 고통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그간 성향을 고려할 때 무역전쟁이 심각하게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고위급 협상단이 워싱턴 DC에 왔음에도 협상 판이 완전히 깨진다면 미국 경기는 심각한 하강기에 들어가거나 잠재적으로 침체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NYT는 미국 주가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추가 관세 경고 속에 사흘간 겨우 2.2% 떨어졌다는 점을 주목하며 낙관적 전망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황을 최악이 아닌 적정선까지만 몰고 갈 것이라는 이른바 '트럼프 풋옵션'(Trump Put)을 투자자들이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28개월 재임 기간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전체 경제에서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인식을 심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물렸다가도 증시나 경제가 약해진다 싶으면 언제라도 물러서곤 했다"고 해설했다.
"트럼프 관세폭탄 떨어지면 美경제 상승세에 '찬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