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1일(현지시간) 발표한 대북 제재 조치와 해상에서의 불법 환적 주의보는 북한에 대한 ‘최대압박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의 제재 회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핵·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WMD) 개발 자금을 차단하는 동시에 미국이 북핵 해법으로 제시한 ‘빅딜(일괄타결)’을 관철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비핵화 빅딜' 외엔 다른 길 없다…美 '對北 최대압박' 고삐
주목되는 건 미국이 대북 제재의 구멍을 틀어막기 위해 북한의 ‘혈맹’인 중국을 정조준했다는 점이다. 미 재무부는 이날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혐의로 다롄하이보국제화물과 랴오닝단싱국제운송 등 중국 해운사 2곳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재무부가 밝힌 제재 사유는 북한 정권을 위한 물품 구매다. 다롄하이보는 북한 정찰총국 산하 백설무역회사에 물품을 공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랴오닝단싱은 유럽연합(EU)에서 북한 당국자들이 북한 정권을 위해 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상습적으로 기만행위를 해왔다는 게 미 재무부의 설명이다.

랴오닝단싱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지난 12일 연례보고서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번호판 없는 벤츠’를 실어 나른 혐의로 유엔 패널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명시한 회사다. 이 벤츠는 지난해 9월 평양 남북한 정상회담 카퍼레이드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함께 탑승했고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베이징 북·중 정상회담 때도 목격됐다.

미국은 중국 해운사 제재를 통해 북한 정권의 사치품 거래 등을 차단하면서 중국에 ‘대북 제재를 철저히 이행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 대외무역의 90% 이상이 중국과 이뤄진다”며 “중국이 모든 대북제재를 이행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대북 제재와 별개로 북한과의 석유 및 석탄 거래 등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95척의 선박 명단을 공개했다. 작년 2월 첫 명단 공개 땐 북한 선박만 24척이 들어갔지만 이번엔 대상 선박이 대폭 늘었다.

특히 러시아, 토고, 파나마, 시에라리온 선박과 함께 한국 선적의 ‘루니스(LUNIS)’라는 선박이 포함됐다. 미국의 동맹국 선박은 한국 선적의 루니스가 유일하다. 재무부는 또 북한의 불법 해상 거래에 연루된 선박들이 선박 간 환적 전후에 정박한 항구를 지도상에 표시하면서 중국, 러시아, 대만 항구와 함께 부산·여수·광양항을 적시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대북 제재 수위를 놓고 엇박자를 내고 있는 한국 정부에 경고장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 재무부는 “북한이 지난해 불법 환적으로 확보한 정제유가 유엔 대북 제재 상한선(연간 50만 배럴)의 7.5배인 378만 배럴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한 것은 제재 강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미국과 협력국은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위해 전념하고 있다”며 “유엔의 대북 제재 이행이 (FFVD의) 성공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불법 무역을 숨기기 위해 기만술을 쓰는 해운사들은 엄청난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이날 제재 강화는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 후 재개된 최대 압박의 연장선이다.

한편 정부는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불법환적 의심 선박 명단에 오른 한국 선적 ‘루니스’호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22일 밝혔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