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제재 어기면 가혹한 벌칙" 외치는 美 "석유가격 치솟게하고 싶진 않아"
미국이 5일(현지시간) ‘2단계 이란 제재’를 시작하면서 제재를 위반하면 가혹한 벌칙을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다만 국제유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 폭등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는 미 동부시간으로 이날 0시부터 이란인, 이란인과 연결된 개인, 기업·단체, 항공기, 선박 등 700개(개인 포함) 이상의 대상에 대해 제재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란 관련 제재 대상은 900개 이상으로 늘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한 뒤 8월7일부터 1단계로 이란과의 금·귀금속, 석탄 거래 등을 제한했다. 이어 이날부터 2단계 제재를 시작했다. 여기엔 이란의 생명줄과 같은 원유 거래를 비롯해 천연가스, 석유화학 제품, 항만운영, 에너지·조선·선박 거래 등을 제한했다. 이를 어기는 외국 기업이나 개인도 제재를 받는다.

재무부는 “미국이 가하는 최대의 압박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함께 워싱턴DC의 내셔널프레스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만약 (어떤)회사가 이란에서 우리의 제재를 피해 비밀리에 제재받을 수 있는 상거래를 지속한다면 미국은 잠재적 제재를 포함해 가혹하고 신속한 벌칙을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제재를 무시하고 이란과 사업을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란에서 철수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사업 결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 일본, 대만, 터키, 이탈리아 그리스 등 8개국에 대해 최대 180일까지 한시적으로 이란과 원유 거래를 인정했다. 이란산 원유 거래 금지가 국제유가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역대 가장 강경한 제재들을 부과하고 있지만, 석유에 대해서는 조금 더 천천히 가길 원한다”며 “왜냐하면 나는 전 세계의 석유 가격을 치솟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때문에 나는 ‘위대한 영웅’이 되고자 그것(원유수입)을 즉각적으로 ‘제로(0)’ 수준으로 떨어트리려고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국제유가는 미국의 이란 원유거래 제한에도 불구하고 하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0.1%(0.04달러) 내린 63.1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체결된 ‘이란핵협정’을 대신할 새 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협상 조건으로 우라늄 농축중단, 플루토늄 재처리 금지, 모든 핵시설 완전 접근 허용, 기존 핵무기 제조활동 신고, 탄도미사일 개발 금지, 핵 탑재 미사일 개발 중단, 시리아 철군, 이스라엘 위협 중단, 예멘·레바논·이라크 군사 지원 중단, 억류 미국인 석방 등 12가지 조건을 이란에 제시했다. 반면 이란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협정에 탈퇴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때 이란핵협정 체결에 참여했던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 5개국도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핵협정 탈퇴에 반대해왔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