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가 지난달 25일 뉴욕에서 열린 비영리 강연회 ‘테드 토크(TED talk)’에서 미·중 관계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트위터 캡처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가 지난달 25일 뉴욕에서 열린 비영리 강연회 ‘테드 토크(TED talk)’에서 미·중 관계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트위터 캡처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관세 전쟁’을 넘어 정치 경제 군사 등 전방위에 걸친 ‘패권 전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오랫동안 미·중 간 충돌 위험을 경고해온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78)는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두 나라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행동한다면 (강대국 간 충돌이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s trap)’이란 말을 만들어낸 세계적 국제정치학자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술한 펠로폰네소스전쟁을 급부상하는 아테네와 이를 견제하려는 스파르타 간 갈등의 결과로 설명하면서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의 피하기 힘든 전쟁 위험을 투키디데스 함정이라고 불렀다.

▶미·중 무역전쟁이 계속 악화되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졌다고 봅니까.

“상황이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겁니다. 미·중 관세 전쟁은 두 나라 모두에 심각한 해를 끼치겠지만 가장 심각한 위협은 경제적 피해가 아닙니다. 만약 투키디데스가 지금 이 상황을 보고 있다면 ‘중국과 미국이 역사상 최대 충돌을 향해 몽유병 환자처럼 걷고 있다’고 말할 겁니다.”

▶두 나라가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건가요.

“지난 500년간 신흥 강대국이 기존 패권국의 지위를 위협한 사례가 16번 있었는데, 이 중 12번이 전쟁으로 귀결됐습니다. 즉 (미·중 간 전쟁) 위험이 실제로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필연적인 건 아닙니다. 16번의 사례 중 4번은 전쟁을 피했다는 건 역사의 철칙에 의해 운명이 정해진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투키디데스 함정의 요점도 운명론이나 비관론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미·중 간에 놓인 극도의 위험을 우리가 인식해야 한다는 겁니다.”

▶미·중이 치명적인 충돌을 피하려면 뭘 해야 할까요.

“두 나라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행동한다면 역사는 반복될 것입니다.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하려면 (소련과의 직접적인 전쟁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냉전 전략’과 같은 전략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앨리슨 교수는 지난해 저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직접적인 군대의 개입이 ‘국가적 자살 행위’가 될 위험을 피하기 위해 ‘냉전’이 발명됐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어떻습니까.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의 전통 우방인 일본 호주 외에 중립적인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 포위망’을 짜려는 구상으로 평가된다.)

“최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중국 비판) 연설 등에서 윤곽이 드러난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중국 접근법은 분명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만 너무 단편적입니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대소련) 전략을 구체화한 조지 케넌(당시 소련 주재 미 대사)의 장문의 전보문이나 (당시 국무부 관료였던) 폴 니츠의 NSC-68 같은 핵심적인 전략 문서가 (트럼프 행정부에는)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뭐가 부족합니까.

“전략은 목적(ends), 방법(ways), 수단(means)이 일관성을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방법에 비해 목적과 수단이 미흡합니다. 중국과 전면적인 대결이 가능할까요. 구매력지수(PPP)로 평가하면 중국은 이미 미국보다 경제규모가 큽니다. 중국은 모든 아시아 주요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입니다.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논쟁의 여지가 없는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입니다. 미국이 이런 중국을 길들일 수 있을까요. 미국이 리드한다면 누가 따를까요. 호주 일본 같은 미국 동맹국들은 미국 측 카운터파트에 이런 말을 합니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와 미국과의 안보 관계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도록 만들지 말아달라’고 말입니다.”

▶중국이 민주적인 시장경제국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요.

“미국의 역대 행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중국을 편입시키면 중국이 자유시장경제, 민주주의, 법의 지배를 발전시키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이해 당사자가 될 것이란 점에 베팅을 했습니다. 하지만 내기에서 졌죠. 그 결과를 트럼프 행정부가 처리해야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2차 대전 후 미국이 만든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건 어떻게 봅니까.

“온실가스 감축과 무역 촉진을 위해 이전 행정부가 했던 주도적 역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후퇴한 것이나, 미국과 동맹국의 단합된 힘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 질서에 대한 더 큰 도전은 ‘트럼프’라기보다는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재기, 그리고 미국의 상대적인 힘의 쇠퇴입니다.”

▶미·중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뭘 해야 할까요.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의 ‘위험한 역학관계’는 두 나라 모두 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는 제3국의 행동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보다 더 그런 ‘촉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을 상상하긴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낮출수록 세계는 더 편안해질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전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까요. 그렇게 하도록 하려면 한국과 미국은 뭘 해야 합니까.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도록 하고, 북한의 거대한 핵 시설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건 어려운 작업이며 그 작업은 수년간의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다만 ‘미국인들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전보다 더 안전해졌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렇다’입니다. 북한이 계속 협상을 하고, 핵무기와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으며, 핵물질을 다른 곳에 팔지 않는다면(또는 그렇게 만든다면, 전쟁을 피하기 위한) ‘작은 기적’을 향한 움직임이 계속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 리스트 신고 전에 미국이 종전선언에 동의하면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적절한 조건’이 돼야 종전선언을 할 것입니다.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중단하거나 핵무기와 핵물질, 핵시설을 신고하는 게 그런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검증을 위해선 사찰단이 북한에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역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美-中, 역사상 최대 충돌 향해 '몽유병 환자'처럼 걷고 있다"
“동중국해에서 일본과 중국의 갈등은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 보수 정치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귀에 거슬리도록 ‘평화헌법 수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과 일본의 군사력 확대가 중국과 관련한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분명 영향을 줄 겁니다.”

■그레이엄 앨리슨은

지도교수였던 키신저처럼 학계 넘어 현실정책에 관여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미국 안보와 국방정책 분야에서 최고 분석가로 꼽힌다. 미국의 ‘전설적’ 외교안보 전략가로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헨리 키신저가 그의 하버드대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앨리슨 교수도 학계에만 머물지 않고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를 지내는 등 현실 정책에 관여했다. 지금도 국무장관, 국방장관,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분석틀을 토대로 미·중 간 충돌 위험을 경고한 《예정된 전쟁》을 비롯해 쿠바 미사일 위기를 분석한 《결정의 본질》 《리콴유가 말하다》 《핵 테러리즘》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펴냈다.

■약력

△1940년생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초대 학장(1977~1989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국방장관 특별보좌관
△빌 클린턴 행정부 국방부 차관보
△하버드대 벨퍼국제문제연구소장(1995~2017년)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