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 간 첫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마지막 구슬을 하나씩 맞춰가고 있다. 북한이 억류 미국인 세 명을 석방하며 성의를 보이자 미국은 ‘핵무기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폐기(CVID)’를 목표로 내걸며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즉각적 폐기(PVID)’에서 한발 물러나는 모습이다. 비핵화와 그에 따른 체제 보장 및 경제 지원 등을 놓고 북·미 간 큰 틀의 사전 빅딜이 이뤄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구두 메시지’ 관심

백악관은 10일(현지시간) 북한 억류 미국인 세 명의 신병을 인도받은 뒤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의 PVID’ 원칙을 접고, 기존 방침인 CVID를 협상 목표로 공식화했다.

PVID와 CVID의 가장 큰 차이는 ‘핵 기술의 완전 폐기를 위해 어떤 조치를 요구할 것이냐’라는 분석이 많다. 일본 아사히신문 등은 앞서 미국은 그동안 북한과의 사전 교섭에서 영구적 핵 폐기를 위해 핵 기술자들의 해외 이주와 핵 관련 데이터 삭제 등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미 정부가 북한에 핵무기와 핵물질, 관련 시설 폐기 외에 이 같은 개발 인력을 전부 이직시키고 자료도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 핵개발 관련 인력의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핵심 고급 인력 200여 명과 전문 인력 3000여 명, 기술 인력 6000여 명 등 1만 명에 이르는 핵 관련 전문가가 북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취임(지난 2일)을 전후해 이 같은 주장이 나오자 북한 측이 발끈했다. 북한 외무성은 6일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9일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90분 동안 면담한 것은 억류 미국인의 귀환뿐만 아니라 비핵화 수위와 관련해 절충점을 찾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고, 김정은은 “현실적 대안을 갖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노력하는 데 사의를 표한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 회담 보도 시작한 북한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서 돌아온 뒤 “우리(미국과 북한)는 새로운 기반 위에 서 있다”(억류 미국인 환영 행사장)거나 “우리는 회담을 세계 평화를 위한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 것”(트위터 발언), “(북·미 정상회담은) 대성공이 될 것”(기자들과의 문답)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비핵화 담판을 앞두고 한때 형성됐던 북한과의 대치 국면이 완전히 해소된 모습이다. 관심은 폼페이오-김정은의 면담을 통해 북·미 간 사전 합의가 어디까지 이뤄졌는지에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발언 수위를 보면 이미 양국이 비핵화의 방법과 시기를 놓고 협의가 끝났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한이 WMD의 폐기 시한을 명시하고 미국은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길게는 북·미 수교에 이르는 체제보장을 위한 조치를 약속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을 통해 전달한 메시지에 이런 내용 등이 포함돼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11일 “미국과 북한 간 비핵화 방식과 평화체제의 맞교환과 관련해 진전된 내용이 나왔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이 같은 방안을 김정은과 논의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새벽 억류 미국인 환영 행사에서 ‘김정은과 통화했느냐’는 질문에 “내가 그와 직접 통화했는지 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부인하지 않고 가능성을 남겨둔 것이다.

북한은 9일 김정은과 폼페이오 장관의 두 번째 회동 후 북·미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주민에게 처음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다가온 조·미(북·미) 수뇌 상봉과 회담은 역사적인 만남으로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도 이날 김정은과 폼페이오 장관의 회동 소식을 1면 전면을 할애해 상세히 실었다. 큰 틀의 합의가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분석이 많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