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조건에서만 대화"…기존 입장 되풀이·北겨냥 압박 강도 높여
트럼프, 대화 손 내민 북한에 '비핵화 원칙' 떠안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북미대화는 '적절한 조건'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비핵화 북미대화 원칙을 거듭 강조한 것이지만, 북한이 북미 대화 의사를 밝힌 이후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첫 공식 언급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주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미 대화와 관련, "양국이 모두 대화를 원하지만 '적절한 조건에서만'(only under the right conditions) 대화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남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한국시간으로 25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북미 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한 데 대한 대응 성격이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적절한 조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비핵화를 의미한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은 대화는 의미가 없다는 것은 트럼프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는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북한의 메시지가 비핵화로 가는 첫걸음인지 지켜보겠다.

북한과의 어떠한 대화도 비핵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전날 백악관 대변인 성명과 궤를 함께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겠다"라며 북한을 압박했다.

앞으로 북한이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일지 주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AP통신은 북한이 먼저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회담을 연다는 게 미 정부의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라는 북한의 입장이 한 치의 변화도 없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원칙을 거듭 천명함에 따라 양측이 당장 얼굴을 맞대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이미 대화 의사를 확인한 북미가 쏟아내는 엇갈린 주장은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 싸움 성격도 있는 만큼 북미 간 대화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적어도 대화 의사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탐색 대화'라도 필요하다는 것은 북미 양측 모두에게 공통된 숙제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성' 발언도 그 특유의 화법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대화 등 해빙 모드에 대해 "좋은 일"이라면서도 "(올림픽) 이후 상황은 누가 알겠느냐"는 냉소적인 발언을 해, '포스트 평창' 국면의 한반도 긴장 우려를 고조시켰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평창올림픽 기간 펜스 부통령과 북측 대표단 간 회동을 승인한 사실이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보도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 정부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북측에 비핵화 의지를 보이라고 요구한 것"이라며 "북미대화가 무르익을 수 있는 국면에서 대북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