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미국의 인프라 투자에 협력하고, 투명하며 경쟁력 있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확대하고자 한다.”(맬컴 턴불 호주 총리)

“호주와의 무역거래 군사안보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미국과 호주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훌륭하고 강해질 것이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호주가 미국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턴불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양국 간 인프라 투자와 무역·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우방관계인 두 나라가 친밀도를 높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호주 언론인 오스트레일리안파이낸셜리뷰는 “호주와 미국, 일본, 인도가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실크로드 전략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맞서 공동 인프라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미·호주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에 4개국의 반(反)일대일로 구상이 포함됐다.

호주가 양국 간 협력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하나의 정책으로 미국 내 인프라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턴불 총리는 방미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1조5000억달러(약 1600조원) 규모의 인프라 사업에 호주 연기금이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반중으로 돌아선 호주, 미국과 '반(反)일대일로' 연합전선
◆G2 패권 경쟁에 낀 호주

호주와 미국 간 정상회담은 유라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에 강력한 견제구다. 턴불 총리의 방미를 두고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국과 호주가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호주는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낀 나라 중 하나다. 호주 정부는 지난해 외교백서를 통해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인정하지만 미국의 개입주의가 호주 이익에 더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리며 대중(對中)·대미(對美) 노선을 분명히 했다. 외교백서는 “미국의 강력한 안보 개입이 없다면 역내 권력은 더 빠르게 이동할 것이고 호주의 안보와 안정을 이루기가 더욱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

호주는 인도·태평양 일부 지역에선 중국의 힘과 영향력이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외교백서에 따르면 2030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42조4000억달러로, 같은 해 미국(24조달러)을 크게 웃돌 전망이다.

무엇보다 광물·에너지자원 수출 및 교육·관광 등 호주 경제의 각 분야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해 호주 전체 수출액의 29.6%를 중국 시장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호주 광물·에너지자원 수입액은 610억달러로 일본의 두 배 이상이다. 지난해 호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뉴질랜드인 다음으로 많은 138만 명에 달했다. 호주 내 중국 유학생은 15만7000명에 이른다.

◆커지는 ‘차이나포비아’

호주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개입이 호주 이익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린 이유는 뭘까. 미국과의 동맹 강화로 자유민주주의, 정치·경제·종교 자유, 인권, 법치 등 호주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외교백서는 강조했다.

호주의 외교 정책 기조는 대중 정책에 그대로 반영됐다. 호주 정부는 스파이의 최고형을 무기징역으로 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전력시설과 농업용지의 외국인 구매를 제한하는 등 지난해 말부터 중국을 겨냥한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차이나머니(중국 자본)’의 유입과 맞물려 호주 국내 정치·경제·사회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이 비대해지는 현상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다국적 컨설팅기업 KPMG와 호주 시드니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900억달러를 호주에 투자했다. 미국(1000억달러) 다음으로 호주 투자액이 많다. 중국의 수요 감소 등으로 인한 광업 부진 탓에 호주 경제가 침체를 겪는 동안 중국 자본 침투가 더욱 활발해졌다.

호주 다윈항 개발사업권 등 핵심 인프라를 비롯한 자원 개발권을 중국이 매입하면서 우려는 계속 커졌다. 지난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가 중국 광산기업인 선화에너지의 호주 현지 석탄채굴 허가권을 되사기로 했을 정도다.

호주 내 정치 스캔들도 ‘차이나포비아(중국 혐오)’를 부채질했다. 지난해 12월 샘 데스티에리 노동당 의원이 기부금 스캔들로 사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개인 채무를 갚으려고 중국 사업가의 기부금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데스티에리 의원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옹호하는 등 당론과 반대되는 견해를 밝혀 논란이 커졌다. 턴불 총리는 “나라에 안보 위협을 가했다”며 데스티에리 의원을 강력 비난했다.

그 여파로 호주 정부는 정당이나 로비단체에 대한 외국 기부금이 일정 금액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호주 주요 정당에 유입된 외국 정치자금의 80%는 화교를 통해 들어온 중국 돈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의 반중 정책을 반대하는 여론도 있다. 케빈 러드 전 총리(노동당) 같은 지중파(知中派)는 “중국을 상대로 지하드(jihad·성전)를 벌인다”며 “현 정부 정책은 신(新)매카시즘(극단적 반공주의)”이라고 비판했다.

◆中 ‘일대일로’ 견제 심화

호주는 대외적으로 중국의 패권 확대 정책인 일대일로를 견제하는 행보도 넓히고 있다. 인도, 일본, 미국과 작년 말부터 인도·태평양에서 △국제법 준수 △남중국해 항행·항공의 자유 △룰이 지배하는 질서 등의 가치를 공유하고 지키기 위한 4개국 협의를 시작했다. 일본과는 올해 처음 합동군사훈련도 한다.

호주 정부는 중국이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에 군사기지 일곱 곳을 구축한 것과 관련해 “일부 강대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거나 훼손하고 있다”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콘세타 피에라반티 웰스 호주 국제개발부 장관은 남태평양 국가에 대한 중국의 인프라 지원이 불리한 조건으로 차관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호주는 국방력 강화에도 나섰다. 향후 10년간 국방예산으로 2000억호주달러(약 169조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방위산업을 키워 10년 후 세계 10대 무기수출국으로 올라서겠다는 목표까지 밝혔다.

현재 호주가 글로벌 무기 수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3%로 세계 20위 수준이다. 전자, 감시시스템, 군사소프트웨어 등을 중심으로 한 수출액이 연간 15억~25억호주달러에 이른다.

호주와 동맹국들의 협력 행보에 중국은 반발하고 있다. 중국 네티즌이 꼽은 중국에 가장 비우호적인 국가는 호주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환구시보가 지난해 말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 아시아태평양 정책의 매파(강경파)인 해리 해리스 전 미군 태평양사령관을 호주대사로 지명하자 중국 관영 매체들은 “오늘 밤에라도 전쟁을 개시할 준비를 하고 있는 과격분자”라고 비판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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