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치의 중심지인 독일 베를린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요람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에서 모여든 다양한 인재들이 자유로운 창업 분위기를 만들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로 청년들이 창업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어서다.

베를린이 스타트업 중심지로 거듭나면서 소프트뱅크와 현대자동차그룹, 보쉬 등 글로벌 기업도 투자에 나섰다. 베를린은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을 기반으로 스마트시티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현실화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 '스마트시티'로 부상… 소프트뱅크·현대차 등 투자 몰린다
◆소프트뱅크, 독일 기업에 첫 투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현지시간) 일본 소프트뱅크가 독일의 온라인 중고차 판매회사인 오토1에 4억6000만유로(약 6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소프트뱅크가 독일 기업에 투자한 것은 처음이다.

오토1은 개인 소비자, 도매상 등을 대상으로 중고차를 공급하는 온라인 회사로 2012년 베를린에서 창업했다. 30개국에 지사가 있으며 거래처 3만5000곳에 매달 4만 대 이상을 판매하고 있다. 공급과 수요를 분석하고 최적의 물류 상태를 구축하는 기술 덕분에 유럽 전역에 안정적인 판매망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930억달러(약 98조7500억원) 규모의 기술펀드인 비전펀드를 통해 오토1에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투자로 오토1의 기업가치는 29억유로로 상승했다. 회사 지분은 소프트뱅크가 20%를 갖고, 공동 최고경영자(CEO)인 하칸 콕과 크리스티안 베터맨이 30%를 유지한다. FT는 “이번 투자는 미래 운송시장을 주도하길 원하는 소프트뱅크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며 “동시에 베를린 스타트업의 활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베를린에 몰리는 투자 자금

베를린 스타트업의 활기는 투자금액으로도 증명된다. 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앤영(EY)에 따르면 독일 스타트업은 지난해보다 88% 증가한 43억유로의 자금을 유치했다. 이 중 70%가 베를린에 쏠렸다.

베를린에서 창업한 전자상거래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가 몰렸다. 지난해 기업공개(IPO)를 한 헬로프레시는 미국의 블루에이프런처럼 바로 조리가 가능한 간편 식자재를 공급하는 회사다. 음식배달 서비스회사이자 국내 기업 요기요와 배달통의 최대주주인 딜리버리히어로도 베를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두 기업을 비롯한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은 지난해 18억유로를 유치했다. 핀테크 기업도 5억4100만유로를 조달했다.

베를린에는 스타트업 중심지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한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사람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벤처캐피털 자금도 속속 유입되고 있다.

투자자는 정보기술(IT), 패션, 음악, 음식, 자동차 등 다방면에 아이디어를 지닌 인재들을 베를린의 경쟁력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경쟁 도시에 비해 저렴한 임대료도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베를린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자산정보업체 네스트픽은 베를린을 ‘스타트업하기 좋은 도시’ 2위로 선정했다. 페터 렌나르츠 EY 파트너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파리, 런던 등과 함께 베를린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발판삼아 스마트시티 도약

베를린의 역동성을 확인한 현대차도 베를린에 혁신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지난 7일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로봇 등 미래 혁신기술의 연구개발(R&D)을 위해 한국 중국 독일에 오픈이노베이션센터를 짓는다고 발표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퍼져 있는 유망 스타트업과 힘을 합쳐 신기술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독일은 현대 자동차산업의 중심국가인 데다 베를린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용하면 기술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베를린 센터에서는 스마트시티, 스마트 이동수단(모빌리티) 신사업 확보에 주력한다.

베를린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전기산업을 기반으로 각종 혁신이 이뤄진 ‘원조 스마트시티’였다. 이제 베를린은 21세기 스마트시티를 주도하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베를린은 급성장하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발판삼아 스마트시티로 업그레이드한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스마트시티는 교통, 주거, 보건, 치안 등 도시 인프라 각 분야에서 AI 시스템을 활용해 4차 산업혁명이 구현되는 도시를 뜻한다. 스마트시티 구축을 위해선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개념의 기업이 필요한데, 이를 스타트업이 이끌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020년께 세계 스마트시티 시장 규모를 8000억달러로 예측한 보쉬도 베를린을 포함한 세계 14개 도시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