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구리 거래의 중심축이 영국 런던과 미국 시카고에서 중국 상하이로 이동하고 있다. 철광석 거래에선 홍콩이 싱가포르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천연고무 시장은 상하이가 일본 도쿄를 제치고 세계 최대 거래시장으로 자리잡았다.
구리는 상하이, 철광석은 홍콩…중국, '원자재 거래 허브'로 부상
세계 최대 원자재 소비국인 중국이 막강한 ‘바잉파워(buying power)’를 무기로 글로벌 원자재 거래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투기 자본이 중국 원자재 시장에 몰려들면서 글로벌 경기 척도로서의 원자재 가격 신뢰도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구리 중심축 상하이로 이동

미국 경제전문 매체 CNBC방송은 지난 3년 동안 세계 구리 거래 시장에서 중국의 입김이 세졌으며 구리 가격이 런던금속거래소보다 상하이선물거래소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고 16일(현지시간) 전했다. 데인 데이비스 바클레이즈 원자재리서치 애널리스트는 “구리를 비롯한 금속 가격에 미치는 중력의 중심이 점차 중국으로 옮겨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금융정보 제공업체 외신에 따르면 이날 상하이거래소에서 이뤄진 구리 선물계약은 12만5994건으로 시카고거래소 산하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체결된 9만6023건, 런던거래소의 8만4215건을 웃돌았다.

중국은 세계 구리 소비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동안 구리 선물계약은 런던금속거래소와 세계 최대 상품거래소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주로 이뤄졌다. 콜린 해밀턴 BMO캐피털마켓 원자재리서치 책임자는 “런던거래소가 여전히 글로벌 거래의 기준(벤치마크)이지만 런던 가격에 미치는 상하이거래소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카고상품거래소는 오는 20일 상하이의 현물가격에 바탕을 둔 구리 선물계약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중국에서 거래되는 구리 가격에 노출된 위험(익스포저)을 헤지할 수 있는 최초의 금융 상품이다. 시카고거래소는 이 상품이 중국에 인도되거나 중국에서 거래되는 구리에 대한 기준값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싱가포르와 일본도 중국에 밀려

철광석 거래 시장에선 홍콩증권거래소가 그동안 선두를 지켜 온 싱가포르거래소를 위협하고 있다. 홍콩거래소는 지난 13일 미국 달러로 결제되는 첫 철광석 선물거래를 시작했다.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6개월 동안 거래 수수료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중국은 세계 철광석 수요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이 수입한 철광석은 10억t에 달한다. 지금까지 철광석 선물가격은 싱가포르거래소 가격이 가장 광범위하게 쓰였다. 거래 규모는 중국의 다롄상품거래소보다 작지만 투기 수요가 많은 다롄과 달리 싱가포르에선 헤지 수요가 많아 시세를 더 잘 반영한다는 이유에서다.

홍콩거래소는 선물거래가 본격화되면 철광석 가격 위험을 헤지하길 원하는 시장 참가자에게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기준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상하이선물거래소는 천연고무 거래 시장에서 1위였던 도쿄 상품거래소를 제쳤다. 지난 10년간 상하이거래소의 천연고무 선물 거래량이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난 데 비해 도쿄거래소에선 이전의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세계 고무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는 고무 거래 중심지를 도쿄에서 상하이로 옮겼다.

◆가격 신뢰도 훼손할 수도

시장조사 전문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2013년 4월부터 올해 7월까지 상하이선물거래소의 원자재 거래 규모는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반면 런던금속거래소 거래량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12%가량 줄었다.

구리, 철광석 등 원자재는 다리 건설부터 자동차 제조 등 모든 산업에 활용된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미래 경기를 가늠하는 척도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이 원자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시장 왜곡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런던·시카고거래소와 상하이거래소의 투자자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런던과 시카고거래소는 원자재 현물 거래에 따른 위험을 헤지하려는 기관투자가 비중이 크지만 상하이거래소는 단기적인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세력 비중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 웡 BMO캐피털마켓 금속거래 책임자는 “투기세력이 가격 변동성을 높여 경기를 예측하는 바로미터로 사용되는 원자재 가격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마이클 비드머 BoA메릴린치 수석전략가는 “올해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끈 주요 동력은 중국의 투기세력”이라며 “사실상 펀더멘털(기초여건)에서는 어떤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