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대북 대화 제의는 미국 내에서 북핵 강경대응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 후 중국 압박 강화론, 북한 정권교체론 등 강경한 주장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북한과 러시아, 이란을 한꺼번에 제재하는 패키지 법안에 서명했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과열된 분위기를 정리하고, 다음 단계를 밟기 위한 전략적 조치라는 분석이다.
"대화 끝났다" 이틀 후 "대화하고 싶다"…미국, 북핵 대응 종착역은?
◆스텝 꼬이는 美 대북 정책

틸러슨 장관은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밝히면서 북한에 △정권교체 △체제붕괴 △통일가속화 △북침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4불(不)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이를 이해하고 북한의 미래에 대해 한자리에 앉아 대화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외 옵션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선의의 대화 제의에 응할 마지막 기회라는 복선을 깔고 있다.

이 같은 발언은 불과 이틀 전 니키 헤일리 주(駐)유엔 미국 대사가 “북한과의 대화시간은 끝났다”고 선언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헤일리 대사는 지난달 30일 성명을 통해 북한과의 직접 대화 가능성에 선을 그으면서 중국에 대북제재 동참을 결정할 것을 압박했다.

두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백악관 권력투쟁으로 인한 난맥상과 건강보험법 개편 등 핵심 국정과제 추진 등으로 북핵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스텝이 꼬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 조야의 과열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새로운 대북정책을 모색하기 위한 의도적 발언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그레이엄 “북한 변화 없으면 군사행동”

대북 강경론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린지 그레이엄 미 상원의원은 1일 NBC방송에 출연해 “북한의 도발이 계속된다면 군사행동 외에 다른 옵션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전쟁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 그런 발언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은 군사옵션에 대해서는 후순위 정책으로 분류하고 있다.

북한 정권교체론은 더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달 한 강연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진다면 좋겠지만 (그게 평화적 방법으로 안 된다면) 북한의 핵 개발 능력과 핵 개발 의도가 있는 인물을 분리해 떼어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폼페이오 국장은 미 행정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북한의 정권교체와 체제붕괴 등을 추진하지 않겠지만 북한이 선을 넘는다면 김정은 제거작전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스승’으로 알려진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한반도 내 미군 철수와 비핵화된 통일한국을 놓고 중국과 빅딜에 나서라는 주문도 내놓았다.

◆트럼프, 북한·러·이란 제재법 서명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중국 압박 강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ICBM급 미사일 도발 다음날 트위터에 대중 무역적자를 거론하며 “중국은 북핵 해결을 돕지 않고 말만 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주 중 수입 철강 규제와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도입 등 강력한 대중국 압박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북한·러시아·이란 제재안에 서명했다고 백악관 관계자들이 밝혔다. 지난달 27일 상원 의회를 통과한 지 엿새 만에 법안을 승인한 것이다.

법안에는 북한의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을 봉쇄하고 다른 나라들이 북한과 인력·상품 거래 등을 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 밖에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해킹 사건도 제재 대상으로 추가하고 러시아 기업의 미국과 유럽 내 석유 사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으며, 대통령의 제재 완화나 정책 변경 여지도 차단했다. 이란 제재 안에는 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무기 금수 조치 등이 담겼다.

워싱턴=박수진/베이징=강동균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