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미국이 주목해야 할 '트럼프 공포'
1937년생인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한국 나이로 올해 81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최고령 장관이다. 지난 19일 상무부 주최로 워싱턴DC 인근에서 열린 ‘선택 USA(Select USA)’ 행사에 참석한 그의 얼굴엔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행사장 곳곳을 누비며 연설하고, 토론을 주재하고, 서명하고, 사진을 찍는 ‘초치기’ 일정을 무리없이 소화했다.

미국 내 투자를 유치하고 홍보하는 이날 행사는 대성황이었다. 윌리엄 버웰 상무부 행사국장은 “70여 개국에서 2800명의 투자자들이 참석했다”며 “2014년 행사 시작 이후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200명가량 늘어난 참여 인원이다. 중국(155명)과 일본(123명)에서는 100명이 넘는 투자단을 파견했다. 한국에서도 47명이 참석했다. 규모는 작았지만 지난해보다 인원이 두 배로 늘었다. 증가 폭이 제일 컸다.

로스 장관은 개막사를 통해 “미국이 새로운 경제 부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며 “미국만큼 투자하기 좋은 나라는 없다”고 성황 배경을 자평했다. 그렇더라도 예년보다 참석자들이 ‘불어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다른 배경까지 놓칠 순 없었다.

처음으로 행사장을 찾았다는 일본 냉난방기 업체 관계자가 정곡을 찔렀다. 그는 “투자 기회도 발굴해야 하지만 자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규제 등 통상정책이 어떻게 될지 점검해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올해 세 번째 참석이라는 한 한국 기업인은 “참석자들 표정이 그 전보다 밝지 않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미국 주정부별로 마련한 부스를 돌며 상담하면서도 미국 내 분위기를 탐색하느라 바빴다. 휴식시간엔 트럼프 대통령 탄핵 가능성이나 백악관 내 ‘미국 우선주의자’들과 ‘국제주의자’들 간 암투 등과 관련한 정보를 교환했다.

한 참석자는 “예년보다 투자자들이 많이 몰렸지만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에 대한 공포와 불확실성이 사라질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투자 유치 기대에 부푼 로스 장관이 이런 ‘트럼프 공포’를 읽어 냈는지 모르겠다.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