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EU 탈퇴시키고 트럼프 백악관 입성시킨 세력 저물었다"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포퓰리스트 마린 르펜의 패배와 함께 유럽 기성 정치권이 일제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르펜이 극단적인 국수주의, 반세계화를 부르짖은 만큼 그가 당선되면 유럽이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7일(현지시간) 프랑스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에마뉘엘 마크롱(39)은 반기득권 기조의 하나로 EU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강력한 유럽통합을 주장한 인물이다.

마크롱은 르펜에 맞서 유럽연합(EU) 탈퇴, 반이주, 보호주의 무역, 국수주의에 반대하며 노동규제 완화, 자유무역, 문화적 다원주의를 외쳤다.

프랑스 공화, 사회 양당체제를 붕괴시킨 신예이기는 하지만 르펜처럼 극단적으로 기성정치를 해체할 것으로는 관측되지 않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르펜의 패배는 영국을 EU에서 탈퇴시키고 도널드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킨 포퓰리즘이 유럽에서 저문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유럽의 포퓰리스트 세력은 작년 6월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가결을 계기로 걷잡을 수 없이 확장했다.

대규모 난민사태와 극단주의 테러로 인한 불안감, 글로벌 경제위기 후 나타난 소득 양극화, 상대적 빈곤, 세계화 이윤분배에서 소외된 데 대한 반감이 폭발한 계기라는 게 그간 전문가들의 해석이었다.

기성 정치권을 전복하자는 포퓰리스트들의 선동은 인터넷, 특히 소셜미디어로 연결된 세계에서 대서양 양안을 실시간으로 오가며 여론을 지배했다.

작년 11월 미국 대선에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이주민, 여성, 소수 인종에게 막말을 일삼던 아웃사이더인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불거졌다.

이탈리아에서는 같은 해 12월 마테오 렌치 당시 총리가 자신의 총리직을 걸고 실시한 정치개혁 국민투표가 포퓰리스트의 선동에 막혀 부결되는 사태가 잇따랐다.

국민투표 내용과 관계없이 기성정치 심판을 외치며 부결 운동에 나선 좌파성향의 오성운동과 극우 북부리그는 달라진 존재감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들 세력의 국수주의 바람은 작년 12월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잦아들기 시작했다.

당시 무소속 후보 알렉산더 판 데어벨렌이 '트럼프의 쌍둥이'로 불릴 만큼 국수주의, 반이민 성향이 짙은 극우 자유당 노르베르트 호퍼를 따돌렸다.

유럽은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나치 부역자들이 세운 극우정당이 국가원수를 배출할 위기에 안절부절 못하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포퓰리스트들은 올해 3월 네덜란드 총선에서 다시 한번 타격을 받았다.

제1당이 될 것으로까지 거론되던 극우 자유당이 예상보다 훨씬 못한 결과에 무너졌다.

중도보수 자유민주당이 기존 1당을 유지했다.

자유당의 대표인 극우성향의 포퓰리스트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극단적 국수주의 때문에 '네덜란드의 트럼프'로 불리며 인종차별로 사법처리된 경력도 있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에서 포퓰리즘이 중상을 입자 올해 4∼5월 펼쳐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르펜 후보의 지지율도 덩달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르펜이 지난달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선두를 놓치자 이미 유럽에서는 포퓰리즘이 썰물처럼 빠지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포퓰리스트의 기세를 확인할 수 있는 유럽의 다음 대형 정치 이벤트는 다음 달 영국의 조기총선과 올해 9월 독일의 연방의회 선거다.

영국 총선은 EU와 브렉시트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보수당 정권에 대한 재신임 투표로 볼 수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현재 영국에서는 브렉시트가 포퓰리스트 거짓 선동 때문에 가결됐다는 분석과 함께 탈퇴 결정을 후회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보수당 내의 강경 탈퇴진영과 브렉시트 운동의 선봉에 선 극우정당 영국독립당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조기총선을 한 달 앞두고 지난 4일 열린 지방선거에서 영국독립당은 보유하던 64석을 모두 잃고 냉혹해진 여론을 체감했다.

그러나 집권 보수당은 대승을 거둬 총선 압승을 예고했다.

독일에서는 애초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이 기세를 자랑했으나 현재 이들 세력은 지지율 하락에 내홍까지 겪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당수로 있는 중도우파 기독민주당은 연방의회 선거의 풍향계로 불리는 지방선거에서 최근 잇따라 압승을 거둬 4연임 청신호를 켰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