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2017년 미국경제학회(AEA) 총회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세계경제 어디로 가고 있나’를 주제로 한 개막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2006년 수상),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2001년 수상), 로저 마이어슨 시카고대 교수(2007년 수상),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2015년 수상),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2013년 수상). 시카고=이심기  특파원
지난 6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2017년 미국경제학회(AEA) 총회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세계경제 어디로 가고 있나’를 주제로 한 개막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2006년 수상),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2001년 수상), 로저 마이어슨 시카고대 교수(2007년 수상),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2015년 수상),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2013년 수상). 시카고=이심기 특파원
지난 6일 열린 올해 미국경제학회(AEA)의 대표 세션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연구 분야도 각기 다른 석학들이 이례적으로 한자리에 같이 앉았다. 이날 주제는 ‘세계경제 어디로 가고 있나’였다. 세계 경제가 혼돈과 불확실성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

◆성장의 믿음 사라져

성장과 불평등 연구의 대가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세계 경제를 “성장률이 둔화하고, 불평등이 증가하며, 정치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디턴 교수는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이룬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 세계에 걸쳐 빈곤율이 하락하고 있고, 국가 간 불평등은 줄어들고 있으며, 유아 사망률은 1950년에 비해 획기적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세계화가 신자유주의의 음모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수십억의 사람을 도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에서조차 빈곤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하루에 2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는 극빈층이 300만명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했다.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자본주의가 일궈낸 영원한 성장은 끝난 것 아닌가 하는 자본주의의 종말(end of capitalism)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인들은 한때 지속적인 성장을 믿었지만 기업들이 수익 감소에 직면하면서 고용을 줄이고, 임금을 낮추면서 노동시장 참가율도 급격히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그는 “자본은 늘지만 성장하지 못하는 자본의 포화점 상태에 직면해 있다”며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도 악화됐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합리적 기대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경제규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화가 일자리를 없앤 주범으로 비난받지만 실제로는 기술혁신이 주된 원인이라며, 이는 세계화가 ‘마법의 지팡이’가 될 것이라는 잘못된 약속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주도형 제조업 개발을 통한 글로벌 성장 모델은 끝났다”며 “경제가 성장하고, 생산성이 오르더라도 일자리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한 만큼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총생산(GDP)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되며, 서비스 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무인자동차 등을 예로 들며 “기술 발전으로 고용시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온라인 교육사업을 예로 들며 “차별화한 서비스로 ‘승자독식’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석학들은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펠프스 교수는 “노동의 기본 가치가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가정과 커뮤니티에서 인정받고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도 “개인 스스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과도한 ‘지대추구’ 없애야

해법은 정치 개혁으로 모아졌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디턴 교수는 불평등과 빈곤의 원인으로 ‘지대추구(rent-seeking)’를 꼽았다. 그는 대형 제약사 등이 로비 회사를 통해 워싱턴 정가를 주무르며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고 있고, 부패한 의회가 헬스케어 시스템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펠프스 교수는 각국이 경기 침체에 직면하면서 좌우를 떠나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모두 극단적인 포퓰리즘에 의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펠프스 교수는 ‘놀랍게도’ 전체 임금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에 비해 나쁘지 않았지만 불균등과 일자리 감소가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좋은 경제’는 ‘정당한 경제’를 뜻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삶을 설계하고 기회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러 교수는 “좋은 정부의 뒤에는 시민사회가 있다”며 “산업혁명은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시민사회 문화가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시카고=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