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불화 수준 무책임한 외교 않을 것"…외무부는 "상호주의 대응" 제안

미국 정부가 자국 대통령 선거에 '해킹을 통해 개입했다'며 러시아 외교관 35명 추방 등 고강도제재를 취한 데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크렘린궁이 발표한 성명을 통해 "우리는 미국 외교관들에게 문제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추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새해 연휴에 (미국 외교관) 가족과 자녀들이 그들에게 익숙한 휴양지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러시아에 등록된 미국 외교관의 모든 자녀들을 크렘린궁에 있는 새해와 (러시아식) 성탄절 맞이 트리로 초청한다"고 덧붙였다.

푸틴은 "국제관례에 따르면 러시아 측은 적절한 대응 조치를 취할 모든 근거를 갖고 있다"면서 "그러나 대응조치에 대한 권리를 유보하면서 '부엌' 수준의 무책임한 외교로까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정불화 수준의 하찮은 외교 공방을 벌이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는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기초해 향후 러-미 관계 회복과 관련한 추가적 행보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은 "떠나는 미 행정부의 또 다른 비우호적 행보는 도발적이고, 러-미 관계의 추가적 훼손을 겨냥한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이는 명백히 러시아는 물론 미국 국민의 근본적 이해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바마 행정부가 자신의 업무를 이처럼 마무리하는 게 유감이지만 그와 그의 가족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며,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모든 미국민에게도 새해를 축하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미국이 추방한 러시아 외교관과 같은 수의 미국 외교관을 맞추방하자는 자국 외교부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맞제재를 유보한 것은 의외의 결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단 내년 1월 20일 러시아에 우호적인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는 만큼 차기 미 행정부의 태도를 봐가며 대미 정책을 이끌어 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에 앞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미국의 대러 제재에 대한 맞대응 조치로 35명의 미국 외교관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상 기피 인물)로 선언해 추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피 인물에는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 31명과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미 총영사관 직원 4명 등이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는 당연히 그러한 (미국 측의 대러 제재) 행동을 대응 없이 내버려 둘 수 없다.

상호주의는 외교와 국제관계의 법칙이다"면서 "외무부는 다른 부처 동료들과 협의해 35명의 미국 외교관들을 기피인물로 선언하자는 제안을 대통령에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모스크바 북서쪽 자연휴양림 '세레브랸니 보르'(은색의 숲)에 있는 미국 대사관 별장과 모스크바 남쪽 도로즈나야 거리에 있는 미국 창고 이용을 금지하도록 하자는 제안도 했다고 소개했다.

라브로프는 "떠나는 오바마 행정부가 자기들의 대외정책 실패 책임을 러시아에 전가하고, 러시아가 정부 차원에서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근거 없는 비난을 추가로 제기했다"고 비난했다.

미국 정부는 전날 러시아의 미국 대선개입 해킹 의혹에 대한 고강도 보복 조치로 미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대규모 추방, 미국 내 러시아 공관시설 2곳 폐쇄, 해킹 관련 기관과 개인에 대한 경제제재를 골자로 한 대(對)러시아 제재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공보비서(공보수석)는 이날 기자들에게 "상호주의에 입각한 러시아의 대응이 있을 것"이라며 "현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대응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러시아의 대응조치는 미국 측에 상당한 불편을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페스코프는 "3주 정도 임기가 남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예상할 수 없고 공격적인 미국 대외정책의 표현"이라며 "이번 조치는 그러잖아도 바닥에 있는 양국 관계를 최종적으로 훼손하고, 차기 미국 행정부의 대외정책 계획에 타격을 주려는 목표를 겨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권 교체 이후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거친 행보'가 수정되고 양국이 관계 정상화로 나아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도 오바마 행정부가 반(反)러시아적 단말마(斷末魔·death agony)로 임기를 끝내고 있는 것은 유감"이라고 꼬집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