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산시(陝西) 성도인 시안(西安)에 있는, 명나라 때 쌓아올린 성곽 주변 야경이다. 시안에 도읍을 정한 한(漢)나라 때 중화주의적 지향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조용철

산시(陝西) 성도인 시안(西安)에 있는, 명나라 때 쌓아올린 성곽 주변 야경이다. 시안에 도읍을 정한 한(漢)나라 때 중화주의적 지향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조용철

산시(陝西)에는 두 가지 ‘보물’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발이 세 개 달린 솥 정(鼎), 또 하나는 진귀한 옥으로 만든 도장이다. 솥은 모두 아홉 개가 있어 구정(九鼎)으로 불렸고, 도장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옥새(玉璽)다.

춘추시대(BC770~BC476년)가 열리기 전 중원의 권력 중심에 올랐던 주(周)나라는 중국 전역을 아홉 개로 상정해 그를 대표한다는 뜻의 세 발 솥 아홉 개를 만들었다. 그로써 제 자신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점을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전국시대의 혼란을 잠재운 뒤 중국 전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시 중원에서 가장 이름이 높았던 옥으로 도장을 만들었다. 역시 이로써 제가 지닌 무한 권력을 상징하고자 했다. 그 옥새는 혈투로 목숨을 내놓으면서 쟁탈해야 했던 무시무시한 ‘권력 상징’이었다. 진시황 이후의 권력자들이 서로 이것을 차지함으로써 ‘중원의 최고 권력자’로 올랐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엄청난 피바람을 동원했던 물건이었다.

한족과 이족 간 다툼의 역사

[유광종의 '중국 인문기행' (10) 산시(陝西)-2] '내가 천하의 중심' 중화주의 요람

왜 이런 상징물이 필요했던 것일까. 중국의 구성은 사실 매우 복잡하다. 중원이 중국 문명의 복판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에 터전을 닦은 대소 국가들과 동서남북 광대한 영역에서 이곳으로 진입하려는 수많은 이족(異族)이 경합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 과정은 그런 중원과 주변 이족이 끊임없이 다툼을 벌여 패권을 차지하려는 혈투의 연속이었다. 춘추전국(春秋戰國) 시기에 그 과정이 아주 혹심했고, 이후의 역사 전개 과정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따라서 누구라도 중심을 잡아 주변을 수렴(收斂)하는 일이 필요했다. 주나라 구정과 진시황의 옥새 등은 그렇듯 주변을 중심으로 모아들이려는 ‘권력 자장(磁場)’의 필요성에서 만든 상징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곳 산시에서는 그 두 가지 보물에 이어 ‘무형의 축선(軸線)’이 등장한다. 두 보물은 그저 상징에 불과했지만, 이 무형의 축선은 2000년 이상 중국인의 사유를 지배하는 실질적인 것이었다. 그 무형의 축선은 바로 ‘대일통(大一統)’이다.

진시황의 진나라에 이어 산시에 등장한 왕조, 한(漢)나라의 무제(武帝) 때에 이르면 당시 개척한 광역의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족(異族)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춘추와 전국, 나아가 진나라 때까지 이어지던 근본적인 문제였다.

한나라 무제를 보필한 두 사람이 그 무렵 나타난다. 하나는 동중서(董仲舒), 다른 이는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다. 동중서는 중원과 주변의 오랑캐를 화이(華夷)의 차별적 구도, 더 나아가 중심으로 주변을 수렴하는 이른바 중화주의(中華主義)의 기초를 닦았다.

동중서와 사마천의 대일통 전략

사마천은 자신의 저작 《사기(史記)》를 통해 황제(黃帝)와 염제(炎帝)로부터 한나라 왕실에 이어지는 적통(嫡統) 중심의 계보를 그은 뒤 주변의 이족을 탄력적으로 끌어들이는 틀을 만들어낸다. 중심을 세워 주변을 수렴해 폭넓은 계통을 이뤄가는 이른바 ‘대일통’의 전략적 시야에 해당하는 작업이었다.

사실 이 ‘대일통’의 사유는 춘추전국 시대 이후 면면히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그러나 한나라에 이르러 동중서와 사마천이라는 인물에 의해 정치적,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낸 개념이다. 이런 대일통의 전략적 사유가 알차게 영글었던 곳이 바로 이 산시다.

중국이 중화주의라는 이념적 지향에 기대 자신의 정체성을 지금까지 이어온 토대에 해당한다. 지금의 산시는 베이징(北京)을 비롯해 동남부 경제 발전 지역에 처져 있다. 인구와 지역 개발에서도 내세울 게 별로 없다. 그러나 요즘은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벌이는 ‘서부 대개발’의 전진 기지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마침 현재 중국 최고 권력자인 시진핑(習近平)의 고향도 이곳이다. 그는 전임자들과는 매우 다른 행보를 보인다. 공산당 총서기 취임의 제1성(聲)으로 ‘중국의 꿈(中國夢)’을 외치던 그는 이제 강력한 통제, 1인 권력 중심의 정치적 틀을 만들어가고 있다. 주나라 구정과 진시황의 옥새, 동중서와 사마천의 ‘대일통’ 사유가 품고 있는 중국의 깊은 전략적 시야를 우리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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