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첫 날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예고
도널드 트럼프 신임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에 미국과 중국이 날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공개적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서만 당선 축하 전화를 받지 못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트럼프 당선자의 내년 1월20일 취임 첫날 조치 리스트에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세계 주요 2개국(G2)인 미·중이 사사건건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 관례상 전화 안 했다?

지난 9일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맬컴 턴불 호주 총리 등이 앞다퉈 트럼프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선을 축하하고 양국 현안에 대한 협력을 요청했다.

미국 CNN은 중국 현지언론을 인용해 “시 주석도 트럼프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건넸다”고 보도했다. 반면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트럼프 당선자에게 건강하고 안정적인 중·미 관계 유지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축전만 보냈다”고 타전했다.
트럼프 취임 첫 날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예고
진위를 가린 건 트럼프 당선자 본인이었다. 그는 지난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대다수 정상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지만 시 주석과는 아직 얘기하지 못했다”고 공개했다. 호프 힉스 트럼프 당선자 대변인도 “당선자의 발언이 사실”이라고 재확인했다.

시 주석이 트럼프 당선자에게 축하 전화를 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관례상 국가주석이 다른 나라 정상들과 전화통화를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올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시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지 않은 것도 그런 관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양국 정상이 벌써부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 유세 과정에서 중국의 대(對)미 무역흑자를 ‘미국 강간’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가며 비난했다. 이런 이유로 시 주석이 축하 전화를 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中 환율조작국’ 지정 강행할 듯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의 내부문건을 입수해 “트럼프 당선자가 취임 후 100일 동안 우선적으로 추진할 과제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공식 포함됐다”고 11일 보도했다.

미국 재무부 정책자문위원 출신인 루이스 알렉산더 노무라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자는 미국 재무부 규정을 바꿔서라도 취임 첫날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WSJ는 “환율조작국 지정은 미·중 양국 간 경제·통상전쟁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초 중국 내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자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고립주의로 규정하며 중국에 득이 될 것으로 관측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비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한국 일본 등과의 군사동맹 등에 트럼프 당선자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당선자가 지정학적 가치를 저평가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발을 빼려는 고립주의를 채택할 것으로만 중국이 생각한다면 나중에 크게 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