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국제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각각 임기 연장을 추진하는 등 한반도 주변 정세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 어느 때보다 정상외교가 시급한 상황에서 우리는 국가 리더십 공백으로 정상외교에서 심각한 차질이 우려된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19일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불참한다. 우리 정상이 APEC 정상회의에 불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지난 9월에 불참이 결정됐다고 설명했지만 그동안 잦은 북한의 도발 속에서도 해외 순방 일정을 무리없이 소화해왔다는 점에서 다소 옹색한 변명이란 지적이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대통령 참석이 어렵다면 국무총리가 대리 참석할 수 있다. 황교안 총리가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경질을 통보받은 총리가 참석해서 무슨 외교를 하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결국 주요 국가 정상이 다 참석하는 회의에 대통령이 불참하는 것 자체가 큰 외교적 차질이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대북 정책에서 한국의 리드를 따르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으나 이제는 그 리드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며 “미국 새 정부가 대북 정책을 수립하고 양국 간 공조를 이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여의치 않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면서 한·중 관계를 역대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로 갈등이 불거지면서 양국 관계가 극도로 악화됐다.

올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시 주석과의 전화통화가 불발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안 도출이 늦어지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외교가의 분석이다.

일본과의 관계도 비슷하다. 위안부 문제 합의로 경색 국면이 다소 풀리는 듯했지만 후속 작업 이행을 놓고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논의가 성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논란도 커져 한·일 관계에 또 다른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금같이 혼란스러운 시국에 불평등 요소가 있는 민감한 협정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도 안갯속이다. 외교부는 “정상회의를 연내 개최한다는 공감대 아래 개최일자를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정상회담 참석과 전화통화 모두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