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무임승차론·신고립주의…한미관계, 경착륙 우려
방위비분담·주한미군철수 압박, 한미갈등 비화가능성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약화 및 동북아 군비경쟁 우려도
"한반도정책 아직은 백지, 입장설명 전방위 노력해야"

최순실 씨 국정 농단 파문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 정부의 외교 동력이 현저하게 약화한 상황에서 9일 미국 대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및 한미관계, 북핵 대응 등에서 큰 충격파가 예상된다.

현지시간으로 8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제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트럼프는 미국의 기존 대외전략의 근간 가운데 하나인 동맹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한국 등 우방국의 대폭적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한편, 관철되지 않을 경우 미군 철수를 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한미관계 긴장·조정 불가피
대외정책에 관한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당선은 가히 '트럼프 쇼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6·25 전쟁 참전과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근간으로 하는 한미동맹과 한미관계 역사상 전례가 없는 도전이다.

외교·안보 분야를 포함한 우리 정부 당국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분위기이며, 향후 트럼프 신행정부가 몰고 올 바람의 향배와 세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충격파는 한국에 직접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트럼프 신 행정부에서 한미관계를 가늠할 첫 단추는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자는 후보시절 한국은 물론, 일본, 독일, 나토(NATO) 등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재협상해야 한다"면서 "정당한 몫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주한 미군철수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럴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또 한국과 일본의 자체 핵무장론에 대해서도 "언젠가 논의해야 할 문제"라면서 "미국이 지금처럼 계속해서 약해지는 길로 나아간다면 그들은 내가 그것을 언급하든 하지 않든 그것(핵무장)을 하려 할 것"이라면서 핵무장을 용인하는 듯한 언급도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방위비 분담금 9천320억원을 부담했다.

주한미군 총주둔 비용은 2조원 가량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 정부는 50%를 부담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의 '방위비 100%' 분담 주장은 우리 정부로서도 수용하기 힘들 뿐 아니라, 차기 미행정부의 압박 강화시 한국 국내에서 정치적 문제로 비화해 거센 반발여론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후반 및 1970년대 초반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 시절의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다시 부각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곧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한미동맹이 삐걱대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의 신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곧 북한에 오판의 빌미를 제공하고, 한국과 일본의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거세게 일면서 동북아 지역에서의 거센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

한미가 이미 합의한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와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도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방위비 분담 등으로 한미간에 갈등이 빚어질 경우 미측이 전작권 조기전환을 내세울 가능성도 주목한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도 "일자리를 죽이는 재앙을 초래하는 협정"이라고 주장해온 만큼 재협상 요구도 거셀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서도 강력한 보호무역을 주장한 데 이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등에서 중국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억제할 필요가 있으며 미군의 강력한 힘을 과시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어 미중 갈등이 더욱 첨예화할 가능성도 있다.

미중간 갈등이 첨예화되면 할수록 한국 외교의 운신 폭도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본질적인 문제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 현안 차원을 넘어 트럼프 당선자가 보다 더 큰 틀에서 신고립주의,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도 일정 부분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방위비 분담금을 허용 가능한 범위내에서 올려주더라도 미국이 그동안 표방하고 추구해오던 '세계의 경찰'에 대한 기대와 역할은 축소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신 고립주의가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이탈 결정)와 맞물리면서, 경제·통상분야에서 뿐 아니라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기존의 동맹·다자주의 기조가 약화하고 '각자도생'의 새로운 흐름이 조성될 수 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최악의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면서도 "트럼프는 그동안 주로 경제나 통상 측면에서 발언했으며, 동아시아나 한반도 등과 관련해서는 키워드만 제시했기에 어떻게 보면 백지상태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무리 트럼프라고 하더라도 미국의 국익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 한반도에서 '비관여(disengage)'를 하거나 주한미군을 철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당선자 측에 우리 입장을 적극 설명하고, 한반도 및 대북정책을 공동으로 만들어기 위한 '올코트 프레싱'(전방위적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순실 파문으로 대미협상력 약화 걸림돌
미 행정부의 교체뿐 아니라 최순실 비선실세 국정농단 파문에 따른 우리 내부의 정치 상황도 향후 한미관계나 북핵 등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파문으로 정치적으로 치명적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최순실 파문이 외교·안보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내치에서 힘을 잃은 정상이 외교무대에서 힘을 받기 어렵다는 것은 일반적 상식이고, 미 차기 행정부와의 한미관계에서 이 같은 우려의 현실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대선 이후와 내년 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대외정책과 한반도 정책, 북핵 정책 등의 기조를 세팅하기까지는 최소한 몇 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전배치로 '핵보유국 쐐기 박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기간은 한미간의 확고한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결정적 시기'가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최순실 파문에 따른 정국을 하루빨리 안정시키고, 트럼프 당선자 측과 신속한 접촉을 통해 북핵 공조와 굳건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