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과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강력한 퇴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하루 최대 100만명의 국민이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겠다며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시위의 표면적 이유는 부패 의혹과 대통령 피선거권 논란이지만 경제 파탄의 책임을 묻겠다는 민심이 폭발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화교중심 경제 등에 불만을 품은 10만여명의 원리주의 무슬림이 시위를 벌이자 호주 국빈 방문을 전격 취소했다.
부패·경제난…위기 몰린 지구촌 대통령들
◆원자재시장 침체로 남아공 경제 추락

남아공은 인도계 굽타가문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대통령 사퇴 정국이 조성됐다. 굽타가문은 1990년대 인도에서 건너와 에너지부터 미디어, 정보기술, 방위산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상당수 남아공 국민은 굽타가문이 내각과 국영기업 인사에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정부계약에서도 특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툴리 마돈셀라 전 국민권익보호원장이 ‘포로가 된 국가’라는 이름의 355장짜리 보고서에서 정부와 굽타가문의 정경유착 의혹을 적나라하게 제기했다”며 “검찰도 보고서 내용에 부합하는 증거가 있다는 발표를 했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일에는 수천명의 시위대가 남아공 수도 프리토리아의 정부 청사로 행진하며 제이컵 주마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으며 반정부 시위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외신들은 남아공이 수십년 만에 최대 위기를 겪는 원인을 취약한 경제에서 찾았다. 남아공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1년 8656달러에서 지난해 5994달러로 감소했다. 실업률은 25.4%에 이르고 있다. 최근 수년간 지속된 원자재시장 침체로 자원부국 남아공의 경제가 휘청이면서 그간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생지까지 따져가며 퇴진 요구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주마 대통령과 비슷한 처지다. 베네수엘라 국민 100만여명은 지난달 26일 대통령 사퇴 목소리를 높였다.

원유 수출이 국가 경제의 95%를 차지하는 베네수엘라는 2014년 배럴당 100달러를 넘던 국제 유가가 50달러 이하로 떨어지자 치명타를 맞았다. 지난해 GDP는 5.7% 감소했다. 물가상승률은 세계은행 공식집계로만 122%에 이르렀다. 실제로는 1000%의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분석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베네수엘라 통화인 볼리바르 가치가 급락하면서 상점에서 돈을 세지 않고 저울로 달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야당은 대통령선거 조기 시행과 대통령에 대한 국민소환 투표 개시 등을 요구했지만 마두로 대통령은 거부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야당은 마두로 대통령의 피선거 자격을 거론하고 있다. WSJ는 “베네수엘라는 본국에서 태어난 사람만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며 “국민연합회의 등 야권 연합은 마두로 대통령이 콜롬비아 태생이라는 주장을 펼쳐 권위를 원천무효화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아직 베네수엘라 정부에 출생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위기다. 전반적인 나라 경제는 괜찮은 수준이지만 국민의 1%에 불과한 중국인과 화교들이 경제권을 쥐면서 대다수 무슬림의 반발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10만여명의 무슬림이 화교 출신의 바쿠시 차하야 푸르나마(일명 아혹) 주지사의 퇴진을 요구하다 경찰과 충돌해 한 명이 사망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6일부터 예정된 호주 국빈 방문을 취소했다. 시위대는 아혹 주지사가 이슬람을 믿지 않으면서 쿠란을 인용해 신성모독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