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도 않고 난타전 돌입, 음담패설 녹음파일, 이메일스캔들 불꽃공방
트럼프 "탈의실 농담에 불과" vs 힐러리 "그것이 바로 트럼프"
"이메일 특검 수사, 감옥 가게 될 것" vs "엉터리, 팩트체크 하자"
트럼프, 힐러리 뒤에 서성대며 노려봐…WP "조폭 두목, 학교 따돌림 이미지 고착"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2차 TV토론은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이었다.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음파일 사태와 소득세 회피 의혹,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 등 두 후보의 아킬레스건이 일제히 도마 위에 올랐고, 거친 공방전이 정해진 시간 90분을 넘겨 가면서 숨 쉴 틈 없이 이어졌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감옥에 보내겠다"(트럼프)는 '협박성' 발언까지 나오는 등 분위기는 시종일관 험악하기만 했다.

9일 저녁 9시(미국 동부시간)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열린 2차 TV토론은 방청객도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는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진행됐다.

CNN 앵커 앤더슨 쿠퍼와 ABC방송 마사 래대츠 기자가 공동 진행자로 나섰고, 40명의 방청객은 아직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무당층 유권자 중에서 갤럽에 의해 선정됐다.

첫 대면부터 냉랭했다.

토론을 이틀 앞두고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공개돼 사면초가에 몰린 트럼프가 클린턴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 스캔들로 맞불을 예고한 탓인지 두 후보의 얼굴을 잔뜩 굳어있었다.

무대의 양쪽 끝에서 중앙으로 들어선 뒤 형식적인 악수조차 하지 않고 청중을 향해서만 인사한 후 각자의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클린턴은 군청색 계열의 바지 정장, 이른바 '전투복'을 입고 나왔고, 트럼프는 1차 토론 때 파란색 넥타이를 맸던 것과는 달리 붉은색 넥타이에 정장을 갖췄다.

초반부터 트럼프의 뇌관인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터졌고, 예열 없는 공방전이 시작됐다.

트럼프는 "나만큼 여성을 존중하는 사람은 없다.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그것은 탈의실에서 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클린턴은 "비디오야말로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대변해 준다. 여성을 모욕했고, 점수를 매겼고, 수치스럽게 했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예고한 대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을 들춰냈다.

"나는 말만 했는데 그(빌 클린턴)는 행동으로 옮겼다. 그가 여성에게 한 짓은 성학대"라며 "정치역사상 아무도 그렇게 한 사람이 없었다"고 역공을 가했다.

트럼프는 폴라 존스 등 빌 클린턴의 성추문 사건에 연관된 여성 3명이 토론장에 참석한 사실을 전한 뒤 "빌 클린턴은 여성을 공격했고 힐러리는 피해자를 비웃었다"며 "힐러리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노련한 클린턴은 덥석 미끼를 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저급하게 가지만, 우리는 고상하게 가자"는 미셸 오바마 여사의 발언을 인용하며 트럼프의 성추문 공격을 깎아내렸다.

그러면서 "단 하나의 비디오만 봤지만 모든 사람이 결론을 낼 수 있다"며 "그러고서도 트럼프는 아무것도, 아무에게도 사과한 적이 없다"고 공세의 고삐를 더욱 조였다.

두 후보는 청중의 질문에 누가 먼저 답변할지를 놓고서도 티격태격했다.

건강보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해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클린턴이 트럼프에게 "먼저 하세요"라고 하자, 트럼프는 "나는 신사다. 당신이 먼저 하세요"라며 도로 넘겼다.

결국 클린턴이 먼저 "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을 늘리고, 혜택의 범위도 90%에서 100%로 끌어올리겠다"고 대답하자, 마이크를 넘겨받은 트럼프는 곧바로 "오바마케어는 재앙과도 같다"고 받아쳤다.

트럼프는 사회자의 진행에도 여러 차례 불만을 쏟아냈다.

진행자에 의해 발언이 끊기자 "힐러리는 대답하게 놔두고 왜 나는 막느냐"고 했고, 클린턴의 약점인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질문을 자기에게 하지 않는다며 "3대1로 토론을 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유독 자기에게만 2분의 발언 시간을 엄격하게 들이댄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이메일 스캔들로 클린턴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3만3천 개의 이메일을 지웠고, 역대로 그렇게 많은 거짓말과 속임수가 있었던 적은 없다. 부끄러운 줄 알라"며 "대통령이 되면 특별검사를 통해 수사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클린턴이 지금까지 한 일의 5분의 1이 거짓말"이라고도 했다.

클린턴은 "트럼프가 말한 모든 것은 틀렸다. 놀랍지도 않다. (청취자들은) '힐러리클린턴닷컴'에 들어가서 사실 확인을 해보라"며 거짓말로 몰고 갔다.

이어 "트럼프와 같은 그런 기질을 가진 누군가가 우리나라의 법을 책임지지 않고 있어 다행"이라고 비꼬았다.

이에 트럼프는 "그럴 경우 당신은 감옥에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되받아쳤다.

트럼프의 연방소득세 회피 의혹도 도마 위에 올랐다.

클린턴은 "10억 달러의 손실을 신고해 연방소득세를 20년간 내지 않은 사람이 최고소득 계층에게 혜택을 주려고 법을 개정하려 한다"고 선공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나는 정말 많은 세금을 냈다"고 두 번이나 말하는 등 물러서지 않았다.

두 후보는 '타운홀' 토론의 득점 포인트인 청중 및 시청자와 교감을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무대를 분주히 가로질렀고, 질문한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열정적으로 답변했다.

그러나 열띤 비방전에만 몰두한 탓에 시청자의 호감을 불러일으키기엔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TV토론이 끝나자 언론의 혹평이 쏟아졌다.

차기 정부의 정책 비전을 제시하며 시청자에게 공감을 얻으려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이전투구식 입씨름만 가득한 데 따른 것이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TV토론 사상 가장 추잡한 토론"이었다고 평가했고, CNN방송은 "진흙탕 싸움"이라며 "일요일밤 미국 정치가 바뀌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암울한 토론이었다. 두 사람은 90분 동안 서로에 대해 공격만 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트럼프는 클린턴이 답변하는 동안 뒤에서 서성대며 카메라를 등지기도 했고, 우두커니 서서 미간을 찡그린 채 클린턴을 노려보는 장면이 여러 번 카메라에 포착됐다.

주로 의자에 앉아 트럼프의 답변을 들은 클린턴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트럼프의 토론 태도에 대해서도 WP는 "그는 마치 조폭 두목처럼 힐러리 뒤에서 어슬렁거려, 그의 학교 따돌림 이미지가 더 굳어졌다"고 했고, 한 네티즌은 SNS에서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클린턴 캠프의 선대본부장인 존 포데스타는 토론 직후 CNN방송에 나와 두 후보가 악수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트럼프는 최근 일련의 행동들로 인해 악수라는 존중으로 받을 자격도 없다"고 말했다.

이날 두 후보는 TV토론이 끝난 후에야 짧은 악수를 했다.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